성경: 로마서 6

0m부터 100m까지

100m 달리기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습니다. 100m 달리기를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비유를 로마서 앞에 장에서 나눈 바 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을 끊고 달리면 영광, 환난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0m부터 100m까지 별의 별 일을 다 겪습니다. 달리는 중간에 미끄러질 수도 있고(죄를 지음), 근육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병에 걸림),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끝까지 무사히 잘 달릴 수도 있습니다. 피니시 라인까지 가는 중에 환호를 받게 됩니다. 영광이 분명 있습니다. 박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끄러지면 어떻게 합니다. 다시 출발선으로 가서 달리기를 해야 합니다. 다음 경기가 있듯이 다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믿음으로 출발한 이의 최종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누구든 피니시 라인을 향해 뛰는데 믿음으로 출발한 이는 영원한 생명이 이르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자의 목적지는 너무나 명확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쓰러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결국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 있어도 죄는 짓는다

이 비유를 마음에 품고 로마서 6장을 읽으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분명 죄를 짓습니다. 중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이 출발한 자와 다른 점은 믿음으로 다시 출발하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출발한 자는 넘어지는 것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계속 넘어져도 무감각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같이 넘어졌는데 다른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넘어져도 다시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같이 넘어져도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노예로 있는 자와 의의 종으로 있는 자의 다른 점입니다.

의도적인 죄인?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 의도적으로 넘어지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두 잘 뛰면서 피니시 라인을 잘 통과하려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뛰려고 하는 사람은 죽은 육상선수입니다. 죄 아래서 죽은 자와 같습니다. 대부분 육상을 하는 사람은 열심히 뛰려고 합니다. 특히 믿음을 가진 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뜁니다. 그래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잘 뛰었는데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이때 레이스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비유가 잘 이해가 되십니까?

정리를 하면 100m 달리기를 할 때 아무렇게나 뛸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마음 놓고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열심히는 뛰는데 믿음으로 출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의보다는 자기 의가 강한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하나님의 의를 품고 영원한 생명을 향해 달립니다. 아무렇게나 뛰는 사람은 중간에 넘어지면 레이스를 그냥 포기합니다. 열심히 뛰는데 믿음으로 출발하지 않은 자는 다시 출발점으로 가게 되어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선택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넘어져도 다시 믿음으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출발과 과정과 마무리가 모두 다릅니다. 겉모양은 같아 보이는데 내막은 다른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하는 자

오늘 사도 바울이 나누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믿음으로 출발한 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은 자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넘어져도 다시 믿음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놓습니다. 넘어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결국에는 피니시 라인을 통과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무렇게나 사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쳐가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실수도 있고, 죄도 짓고, 넘어지고, 영광도 있고, 박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자입니다. 방향성이 너무 정확합니다.

, 여기서 핵심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결론 짓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로마서 623). 하나님의 선물은 바로 그의 은혜를 깨닫는 것, 그가 보내신 이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하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00m 달리를 하는 중에 겪는 경험은 믿음으로 출발한 자나 그렇지 않는 자나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내면에서 다른 게 분명 있습니다.

적용

나는 100m 달리기를 하면서, 중간에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모른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영광의 박수를 받기도 했고, 욕을 먹기도 했고, 부상도 당하기도 했다.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 나는 다시 믿음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믿음. 하나님이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믿음. 또 넘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선다. 나는 빛의 자녀이니까.

Think Deeper

진리도 마찬가지다. 오직 진리를 따를 때에만 진리를 알 수 있다. 쪼개고 따지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오히려 진리를 진리답지 못하게 한다. 진리는 확고하고 장엄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 진리를 우리에게로 부르지 말고 우리가 직접 진리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진리를 정의하려고 시도한는 것 자체가 우리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우찌무라 간조,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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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4/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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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기님의 '믿음으로 출발한 자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은 자입니다.'부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출발점에서 규칙을 위반하면 아무리 잘 달렸어도 그 경기는 무효 입니다. 옛품성으로 이루어 놓은 성과물과 예수님에 대한 '첫 사랑'이 없어진 상태에서 성취한 신앙은 무효 입니다.
  2. 2009/04/18 20:0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요즘 쪼금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경: 로마서 4장

누굴 내 집 안으로 들일 것인가

지난 밤에 꿈을 꿨습니다. 저는 집 문 앞에 서 있었고 하나님은 저에게 아들 세 명 중 한 명만 집 안으로 들여 보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들의 마음 가짐을 살펴본 후에 들여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왜 꼭 1명일까 3명 다 들여보내면 안 될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들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이 집으로 들어올 자격이 어떻게 있니?”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아들은 말합니다. “저는 밖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어요. 착한 일도 많이 했구요. 당연히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아들은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세상이 다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버지는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 아들이 말합니다. “저는 온갖 범죄를 다 저질렀어요. 죄송해서 아버지. 부끄러우시죠. 그런데 저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요. 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아들이 두 명이거든요. 갑자기 아들이 세 명이 됐고 아들 중 한 명만 집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꿈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입장에서 세 번째 아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아들이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자는

잠에서 깨어 로마서 4장을 읽는데 세 번째 아들이 진정으로 믿음을 가진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세상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보다는 당신을 중심에 두는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인간의 업적은 하나님께는 그닥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전 우주에 큰 변화가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업적은 인간들만이 박수를 치는 일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잘못 오해를 하게 됩니다. “열심히 사는 게 잘못됐다는 말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흑백논리를 펼치시는 분이 아닌 것 같아요.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죠. 무엇을 더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입이다.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똑같은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4장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저는 불의합니다. 저 같은 자를 의롭게 하시려는 주님을 이 세상의 중심에 두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45). 단순히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믿는 자를 찾는 것이죠.

하나님의 커트라인은 믿음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많은 업적을 쌓은 분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많은 업적을 쌓았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둔 분들은 물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분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둡니다. 내가 잘나서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품삯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로마서 44).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쓰는 의도를 파악하시겠습니까? 로마서 3장 나눔 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커트라인을 믿음으로 두셨습니다. 공로,. 행함, 업적은 보너스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공로, 행함, 업적은 헛고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봉은 없고 보너스만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율법과 행동을 강조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425)



믿음과
100m 달리기 비유

우리의 의로움은 믿음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로마서 3장에서 나눴던 순 진짜 믿음입니다.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공로, 행함, 업적, 도덕, 율법을 중요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믿음을 더 우선으로 두셨다는 것 입니다. 이 모두가 연결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피니시(finish)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100 m 달리기를 합니다. 피니시 라인을 10초로 통과했습니다.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중간부터 뛰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점이 다르면 10초 기록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100m 15초로 통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출발을 제대로 했고 좀 늦지만 피니시 라인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대기록은 아니지만 기록은 인정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출발도 제대로 하고 피니시도 잘했는데 빨리 달리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습니다. 이것은 부정 레이스가 되고 기록은 모두 박탈됩니다. 여기서 100m 달리기의 출발점은 믿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기록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서 잘 마치면 늦든 빠르든 기록은 인정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출발되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기록은 박탈당하게 됩니다.  업적, 공로는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100m 경기에서 부정출발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시 출발하기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업적, 공로, 기록은 다 무시하고 다시 출발하길 바라십니다. 믿음이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정당한 출발. 율법을 완성한다는 것은 바로 정당한 출발을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정당한 출발을 할 때 100m 기록이 인정되듯이 말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피니시 라인을 좋은 기록으로 통과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적용

내가 부정출발을 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기억이 나에게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원점으로 돌리셨던 하나님, 나는 그분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삶에서도 나는 부정출발을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피니시 라인에서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하실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 출발하고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Think Deeper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새롭고도 철저하게 행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깥이나 에 계신 하나님은 많은 세속적 조직들 속에 묻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내면에 계신 하나님께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밖에 계신 하나님이 사랑의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경험될 수 있는 것처럼, 내면에 계신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적 생명의 원천일 뿐 아니라 태초의 혼돈처럼 엄청난 혼돈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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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4/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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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경제상황이 엄청나게 나빠서 너 나 할 것 없이 고통을 받고있읍니다. 부동산 시장이야말로 가장 영향을 받고있읍니다. 거래가 힘든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은 'buyer's market'입니다.

    박병기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제 생각해 보았던 '믿음은 seeker's market'이 다시 생각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말씀 중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받아드리고 이겨 나갈 힘을 찾는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2. 2009/04/18 20: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Seeker's Market. 구하는 자를 찾으시면 하나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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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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