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가복음 435-41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20065월 영화 다 빈치 코드가 세상에 선보이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 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의 주제는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천사와 악마'라는 비슷한 종류의 영화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2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독교가 헛된 종교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을 화해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다 빈치 코드의 저자인 댄 브라운은 기독교는 조작된 종교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브라운이 고맙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혹은 믿지 않는 것이 단순한 감정이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충실하기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실제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2천 년 전에 잠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해 이적을 행사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그분의 제자들도 믿지 않았으니 2천 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이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댄 브라운 (Dan Brown) / 작가
출생 1964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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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41절을 보십시오. “저가 뉘기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라는 의미입니다. 아니 제자들이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입니까이 말을 하기 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병고침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쫓아다녔던 것일까요? 그런 능력을 어디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부활하시자 제대로믿기 시작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라고 말하기에는 현실성과 역사성이 너무나 뛰어납니다. 증인들도 너무나 많았고, 그가 선보이신 이적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2천 년 후에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성인이 아니다


예수는 그저 성인이 아닙니다
.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저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엄청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댄 브라운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엄청난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댄 브라운의 결론은 예수는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전체 글의 맥락을 보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 부처, 공자, 마호메트 중 한 명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지 미치광이였는지의 문제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시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신 후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적당히 교회에 다니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신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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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용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미치광이인가라고 선택을 해야 한다
. 나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 그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 믿음을 갖고 나는 그의 가르침을 매일 배워야 한다. 그의 뜻을 따라야 한다.

 

Thinking of Jesus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곧 참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런 지식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느 곳을 가든지 치유, 화해, 새로운 삶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에 적절하고자 하며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침내 사라져 버릴 것이며, 오직 우리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의 온 존재를 다해 우리의 형재 자매들인 온 인류에게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깊은 내면을 만드셨으며, 어머니의 태에서 당신을 조성하셨습니다.”(시편 139:13참조)라고 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예수의 이름으로,’ p.29-30)>


헨리 나우웬 (Henri Jozef Machiel Nouwen) /
출생 1932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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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 [연예인] - 주지훈과 음식을 나누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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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9

율법이 강조되는 사회

율법이 강조되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룰을 잘 지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반대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 사회에서 떠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인데 정작 율법만 주인노릇하고 하나님은 없다니 말이죠. 사람이 자신의 의로 하나님께 이르려고 하니 더욱 힘들어집니다. 결국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려고 하는 것에서 한계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한국은 율법을 강조하는 나라인 것 같습니다. 유교의 영향도 있고 기독교가 들어가서 율법을 많이 강조하면서 유교와 기독교가 합세(?)해 율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긍정적인 면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결과는 부정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율법이 강조되면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게 되고 그러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율법으로 하나님께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의해 의에 이르는 자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의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율법으로 의에 이르는 것은 내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칭송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9장 후반부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 독자들에게 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평생을 율법에 의지하여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한 것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율법을 잘 지킨 사람만을 칭찬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비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924절에 하나님은 비유대인들의 하나님이기도 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것

사도 바울은 로마서 내내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은 사실 마이너이고 정말 중요한 메이저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하고 그를 인정해야 하고 그가 꾸준히 참으시고 너그럽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면 항상 나오는 말. “그래도 율법은 중요하다. 계율을 지켜야 한다.” 맞습니다. 틀린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질서를 위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사도 바울 말의 핵심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룰을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음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잘 지키면 믿음이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믿음은 믿음으로 설명해야

믿음은 믿음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위와 이론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믿음은 믿음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나는 너를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이론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체험과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연약하기에 설명을 하고 율법도 만들어 시험도 하고 하지만 사실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믿음은 제한되게나마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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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와 악마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결이라는 전체 그림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밀결사대와 교황청의 갈등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교회는 역사를 통해 너무 많은 틀을 만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봤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문자 안에 담긴 비밀, 문자 안에 있는 뜻, 문자 안에 있는 믿음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가르쳤을 때 반드시 적대적인 그룹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알려줬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천사와 악마는 그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물론 모든 게 교회의 잘못은 아닙니다. 어둠의 영이 강력히 역사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자비하신 하나님, 은혜로운 하나님, 참으시는 하나님을 전하지 못한 것은 기독교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너무 율법으로 묶어둔 것이 실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심을 우리가 너무 제한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궁금점과 인생의 의문점을 해결해주셨기 떄문입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 그 말이 왜 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논쟁 속에서도 여전히 '오직 예수'가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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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8

예수 천당

많은 지식인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에 불편해 했습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얕아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예수 천당과 같은 표현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오직 예수에 대한 오해를 나눴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예수 천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이를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무시하는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를 체험하셨습니다. 육의 몸으로는 인간이 죄를 질 수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구원을 허락하시게 되었습니다.

천사와 악마
감독 론 하워드 (2009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이완 맥그리거, 아옐렛 지러, 스텔란 스카스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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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한 자에게 구원의 소망을 심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인정한 자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을 때 아들이 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아마도 아버지는 재산을 상속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미 아버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뭐가 뒤틀렸는지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 자녀가 된다면 하늘나라를 상속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824절을 보면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라고 나옵니다. 뭐냐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 때 우리 마음에 소망이 생기는데 그것이 곧 하늘나라로 가는 소망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함축한 게 예수 천당입니다. 소망을 갖게 되면 죽음의 몸에서 사는 우리가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구원은 이뤄간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구원은 한 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이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진행적인 느낌이 있는 단어이지 단발성 느낌의 단어가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구원을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소망을 품고 가는 게 우리의 몫이라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실 몫입니다. 확실히 딱 정해진 게 없기에 그 소망을 품은 자는 힘들게 살아갑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합니다. 소망을 품은 자는 물질중심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연약한 몸이 있기에 물질을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이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같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소망 비유

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꿈에 부푼 자가 편히 살다가 메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 선수에게 소망입니다. 소망을 품고 먹고 싶은 것 덜 먹고, 잠 덜 자고, 하고 싶은 것 제한을 받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도 비슷합니다. 그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훈련 과정이 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선수에게 코치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성령이라는 코치가 있습니다. 우리를 훈련하면서도 우리의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가 성령입니다. 힘들지만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천당에 함축된 뜻입니다. 천당에 쉽게 가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 자에겐 코치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요.

예수 천당의 진정한 의미

예수와 천당사이에는 많은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 ‘예수 OOOOOOO천당이라고 할 수 있죠. 공란을 채워볼까요?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을 아시고 구원하신 그분을 믿는 것은 믿음의 출발이고 그 믿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코치(성령)와 함께 가는 길에서 그 소망의 종착역은 바로) 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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