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9장에 보면 갈릴리에서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오실 왕은 평화의 왕이요, 영원한 아버지요, 강한 하나님이요, 놀라운 멘토라는 내용이 9장에 소개됩니다.

너무나 명백한 예수 탄생의 예언 부분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이미 기원전 750년 쯤에 예언이 됐던 것입니다. 97절에 보면 앞으로 태어난 그분은 영원한 평화와 공의와 정의를 가져올 분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모스서도 보면 하나님은 불의하게 돈을 버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화가 나 있으십니다. 가난한 자를 등쳐서 부를 챙기는 자들에 대한 화가 그들에게 미칠 것을 예언자 아모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아모스서 그리고 신명기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이요, 가난한 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요, 평화를 가져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유다 땅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땅은 공의와 정의가 없이 자유경제주의의 이념 아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깊어지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것이 사회주의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서 521절에 나는 너희의 종교 잔치를 싫어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돌보지 않은 채 드리는 제사는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모스 521-24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너희들 노래소리, 제사 지내는 것, 헌금 다 필요 없다.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98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톰 시즈모어, 에드워드 번즈, 맷 데이먼
상세보기

성경 원어에 보면 공의라는 말은 어려움에 빠진 이를 건져내는 일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는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희생됩니까. 그렇지만 구해내려는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어려움에 빠진 인류,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은 비효율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 일입니다. 군림하며 모든 이를 회심케 한 게 아니라 희생하며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내신 것입니다.

이성주의 사회에서는 비효율은 바보짓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여기저기에 공의를 강조하시며 바보짓을 하길 원하십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어려움에 빠진 이를 건져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더 높이 오르려고 하고 더 많이 챙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공의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면서 도움이 필요한 자를 그냥 지나친 자들이 효율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음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내것 챙길 것 다 챙기면서 공의를 이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의 희생과 손해가 있어야 공의가 실현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이셨고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서입니다. 우주의 창조자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공의는 결국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손해를 보게 되고 손해보면서 어려움에 빠진 자를 건져내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자녀가 있는데 부모가 자기 목숨을 생각하겠습니까. 사랑하기에 수영을 못해도 물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장진영 / 국내배우
출생 1974년 6월 14일
신체
팬카페 장진영 공식 팬클럽 JROSE
상세보기

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 씨의 남편이 손해를 보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곧 죽게될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그는 장진영 씨의 가족과 만나 모든 재산이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사랑과 공의는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손해를 감수함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와 아모스서가 씌어졌던 시점은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715년 사이인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기원전 750년 전쯤에 예언을 했고 기원전 715년까지 이사야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서 선지자로서 인정을 받는 자였고 아모스는 남부 유다에서 농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언 또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아모스는 유다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 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모스의 말은 아무래도 무시했겠죠. 오늘날도 치자면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유다 출신의 시골 농부가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한다는 게 좀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이사야와 아모스를 읽으면서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가 땅에 떨어진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맞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22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이사야서와 아모스서가 씌어졌던 시점은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715년 사이인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기원전 750년 전쯤에 예언을 했고 기원전 715년까지 이사야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서 선지자로서 인정을 받는 자였고 아모스는 남부 유다에서 농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언 또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아모스는 유다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 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모스의 말은 아무래도 무시했겠죠. 오늘날도 치자면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유다 출신의 시골 농부가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한다는 게 좀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이사야와 아모스를 읽으면서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가 땅에 떨어진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맞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밝은터]

 

57261196CJ002_hines_ward
57261196CJ002_hines_ward by cmh0150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사야
-아모스와 대중문화의 만남(2)

부(富)하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부는 때로는 명예와 명성을 가져다 줍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었던 혼혈아(요즘은 다문화인으로 불리죠)’ 하인스 워드가 슈퍼보울에서 MVP로 선정됐을 때 그는 부와 명예와 명성을 모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공하니까 세상이 다 알아줬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부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와 유다도 부를 이룬 나라였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사야서 2장에서 유다 땅이 원하는 것을 다 가졌지만 더불어 우상도 함께 갖게 됐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28). 인간이 만든 것을 우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는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우상은 거의 대체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 자신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간은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라는 것은 바로 인간이 만든 시스템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소유하게 되는지에 따라 부가 결정나는 것입니다. 부에 온 정성을 기울일 때 자동으로 따라오는 게 우상입니다. 명성이 자자해지면 교만이라는 우상이 따라옵니다. 한 유명 목사님이 강단에서 교회가 커지고 담임목사가 유명해지면 교만은 동반자처럼 붙어온다고 했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명 목회자가 쓰러지는 이유는 바로 그 교만 때문입니다. 유명 목회자의 자녀가 무너지는 이유는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부와 명예와 명성이 우상숭배로 가는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 길을 원하고 하나님을 등지려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프로그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되지 않으면 인간이 우상숭배로 빠지게 끔 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수도자들이 산속 깊이 들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아주 기초적인 것만이 인간이 만든 것이고 대부분 하나님의 것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과 하나님이 정하신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영성이 잠시라도 회복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뭔가 하나님의 것이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례 요한이 빈들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외치는 자가 됐던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서 영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한 자들이 세상에 나와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것을 경험한 자들의 결과물입니다.

일상 생활을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수도원으로 갈 수도 없는 입장입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것을 발견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길도 인간이 아스팔트로 깔아놓았고 자동차, TV, , 직장, 컴퓨터, 인터넷 등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디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888 =  August 8, 2008, 8-8-8, 8/8/8, 8.8.8, 08.08.08, 08082008 or 080808 - morning, Chicago Loop - HDR - flickr888 Day or flickr Day 24 hrs.
 by doug.siefken 저작자 표시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것 이상으로 높일 때만이 그런 일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사야 211).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요. 먼저, 간단한 것으로 인간이 손을 댈 수 없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를 향해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이 감히 손을 대기 어려운 공간입니다. 그저 비행기를 타고 몇 번 왔다갔다 하는 게 전부입니다. 분당우리교회의 이찬수 목사님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하늘을 자주 봤다고 합니다.

또한 마음 속으로, 운전을 하면서,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곡을 들으며 높으신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만든 차를 운전하면서 아스팔트 길을 가고 있지만 멀리 보이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말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으로 가서 그의 품에 안깁니다. 인공적인 자연보다는 자연 그대로 유지된 하나님의 자연을 보는 것입니다.

인공적으로 몸을 고치는 양방보다는 인체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한방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도 하나님을 우리 인간 삶의 중심에 놓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을 얼마나 오묘하고 절묘하게 만드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비하게 만드신 인간을 돕는 일, 그러한 인간과 대화하는 일도 하나님을 만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부를 가지고 명예를 가지고 명성을 가지고 어려움에 빠진 인간을 도울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와 명성이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찾아보면 나옵니다. 적십자사에서 40년 이상 봉사한 양현승 목사님은 아침에 일어나면 주식 현황을 보는 대신 봉사 현황을 살펴보며 자신이 봉사할 거리를 찾았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인간이 만든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은 현재 제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다른 환경을 주시면 다른 일을 하게 되겠죠.

The Road is llllllllong
The Road is llllllllong by ronsho ©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아스팔트의 딱딱함과 냉혹함 속에 놓여진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요, 그른 것은 인간이 만든 것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계속 왔다갔다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요. [계속]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18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9/12/17 05: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 입니다

Comfort ye
Comfort ye by rogiro 저작자 표시비영리

이사야서와 아모스서가 씌어졌던 시점은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715년 사이인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기원전 750년 전쯤에 예언을 했고 기원전 715년까지 이사야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서 선지자로서 인정을 받는 자였고 아모스는 남부 유다에서 농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언 또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아모스는 유다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 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모스의 말은 아무래도 무시했겠죠. 오늘날도 치자면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유다 출신의 시골 농부가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한다는 게 좀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이사야와 아모스를 읽으면서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가 땅에 떨어진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맞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밝은터]

이사야-아모스와 대중문화의 만남(1)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는 기원전 약 750년 경에 강성한 나라를 이뤘습니다. 강성한 두 나라에 대해 농부 선지자인 아모스와 전문 선지자인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영어 성경으로 이사야서와 아모스서를 읽으면 Says the Lord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들 선지자에게 한 말씀을 그들이 대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원하시는 분인지 그분은 어떤 분인지에 대한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염려하며 가난한 자들을 괴롭히는 힘을 싫어하고 선량한 사람을 마구 죽이는 자들을 혐오하는 분입니다.

재미난 사실은 두 나라는 종교적으로는 풍성한 나라입니다. 종교적인 예식이 이 두 나라를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 선지자는 이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노여움을 두 선지자가 대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교를 원하는 분이 아니라 공의를 원하는 분입니다. 은혜와 자유 속에서 질서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서 115절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해도 나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하는 짓이 혐오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공의를 구하고, 압제된 자를 구하고, 고아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회에서 눌린 자, 힘이 없는 자,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 것에 대한 꾸중입니다. 인생 자체가 죄로 가득하지만 그러한 공의를 구하는 자의 죄는 눈처럼 희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서에서도 하나님은 농부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분노하고 계십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불을 내리겠다는 메시지를 아모스를 통해 전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과 행동을 고치시길 원하십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혼내주는 게 핵심이 아니라 혼나기 전에 생각과 행동을 바꾸라는 일종의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혼난 후에 행동을 바꾸죠. 벌을 선 후에 행동이 수정됩니다. 그 전에 바꾸라는 경고는 어떻게 보면 사랑입니다.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계속 간섭하는 것입니다. 흑돼지를 치는 어떤 분이 있는데 그분은 흑돼지를 낮에는 방목해서 키우고 밤에는 축사로 들어오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분이 방목을 하면서도 저녁 시간이 되어 축사로 들어오는 어떤 음성 신호를 보내면 흑돼지들이 말을 너무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훈련을 했기에 그게 가능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마음(말씀이 아닙니다)을 듣고 알게 된 아이들은 커서도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아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훈련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보다는 대중 문화에서 (심지어 교회에서) 쏟아내는 잘못된 메시지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온통 연예인들 이야기이고 연예인들의 훈훈한 이야기보다는 자극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내용들도 가득차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가난한 이웃을 돕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내용에 대해서는 칙칙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용이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라는 프로그램의 '단비'는 공익에 대한 확고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놀랍고 놀라운 프로그램입니다. 김영희 PD는 아모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인터넷, 대중문화, 언론을 뒤덮고 있습니다. 온갖 욕설과 질투와 미움이 대중문화의 주요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묵묵히 소외된 자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경제적 풍요 속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야 하는 교회는 자리 싸움, 교리 논쟁, 교단 편가르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처럼 종교는 있지만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의 뜻은 이미 사라진 것입니다.

이사야와 아모스를 통해 전하시는 하나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소위 말하는 전문 사역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하나님은 농부였던 아모스를 쓰셨던 것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종교 단체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일들이 줄어들어야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12장에는 우리에게 화나나셨던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구원을 허락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화해자입니다. 그래서 그를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빛 같더라도 그것을 눈처럼 희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은혜요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것을 알면 구속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계속}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jesusinculture.com/trackback/18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Joe Yang
    2010/06/05 10: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장 24절- (공동번역)

BLOG main image
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287)
후원 (1)
운영자 소개 (1)
텔레비전 (11)
영화 (21)
음악 (10)
유명인 (23)
패션 (2)
스포츠 (61)
예술 (1)
게임 (3)
광고 (1)
엔터테인먼트 일반 (6)
문화 행사 (2)
仁터넷 (21)
Re-formation (37)
짧고도 긴 생각 (64)
링크 (13)
사진으로 보는 세상 (2)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