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사실 우리는 핵심적인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바로 '네 몸(yourself)'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달라진다.

아주 유명한 스포츠 라디오 진행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학대한 사람(위 사진)이다. 나는 그를 LA 다저스 구장과 에인절스 구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로 놀랐다. 몸무게가 400파운드가 넘는 것 같았고 걷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이었다.

아주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몸을 학대한 그 사람은 라디오에서 공개적으로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 사용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현실의 기쁨과 성취를 위해 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논조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의 그런 발언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실천이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이웃도 나처럼 살기를 기대하며 '사랑'을 실천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기준과 관점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글렌 스태슨은 "사랑은 상호적이지 결코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결국 내 이웃과 내 몸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상호적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몇 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약물 이슈를 보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생각난 적이 있다. 릭 앤킬이라는 야구 선수가 수년 전 약물을 복용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는 미 언론의 조롱이 시작됐다. 앤킬은 심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야구계를 떠나 있다가 돌아온 선수였다.

나의 삶을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라 앤킬의 이슈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1 인생에서 돈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약물을 잘 활용하면 몇 백만 달러, 몇 천만 달러를 벌 수 있는데..."
#2 약물 복용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 "그거 절대하면 안 돼. 몸 망치고 인생 망친다. 선수들이 너무 걱정돼..."
#3 현재 마약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자: "그게 뭐 어때서, 쿨 하잖아. 잘하고 있어!"
#4 예수님: "네 죄가 없거들랑 돌을 던져라. 그는 100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다." 

 
이들은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내 몸을 내 생각을 내 삶을 어디에 맡기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랑의 표현 방식은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사랑'을 논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이 이상적인 도덕의 완성이라고 착각을 하는 점이다. 사랑은 어려움에 빠진 자를 난관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이웃의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게 어려움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졌던 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사랑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결'(confrontation)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게 바로 사랑의 묘미다. 대결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쉬운 방법(그 자체로 이해하는 척 또는 무관심)을 선택한다. '대결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대결'을 하는 사람을 사랑이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잘못된 사랑의 관점 때문에 오늘날 '사랑(?)'은 연약한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약물 이슈를 보면서 나는 나(myself)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약물 이용 선수를 바라보며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5차원 전면 교육(원동연 박사)'이라는 것을 스스로 도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진작 약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내놓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완벽한 시스템'은 있을 수 없지만 '돕는 시스템'은 만들 수 있다. 나의 사랑 방식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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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down
Showdown by jsnel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독일의 천재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살인마' 히틀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암살'이라는 것은 일단 사람을 속여야 하는 일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기에 촉망받는 신학자인 그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차를 몰고 돌진하는 어떤 미친 운전자(히틀러)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운전대를 빼앗기 위해" 거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 상황에서는 '정의와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암살 계획은 그러나 수포로 돌아갔고 본회퍼를 포함한 저항 동지들은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본회퍼는 1945 49,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사형됐다. 본회퍼의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 그리고 '정의와 평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독재자가 목에 총을 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할 때 우리는 진심을 감추고 따른다. 비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살겠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심'을 드러내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진실'을 위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진심'을 숨긴 사람을 비겁하다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스포츠계에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호세 칸세코가 '메이저리그 스테로이드 사용'을 폭로하기 전까지 이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진실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인가. 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혼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스테로이드 사용은 잘못된 일인데..."라고 생각하면서 폭로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물론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이를 '장려'했던 리그의 고위 관계자들은 명백한 '거짓말쟁이'였다.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은 수년 전 "단장이 되고 싶지 않은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단장은 거짓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 프로 스포츠의 단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야(You are a liar)"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는 아주 '얇은 선(thin line)'이 있다. 단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그러나 '집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자의 질문에 거짓 답변을 했다면 그 단장은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줄어든다. 물론 '얇은 선' 때문에 '진실과 거짓'은 그것을 쉽게 넘나드는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는 맹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싸워요. 싸울 때 입에 담기 어려운 더러운 욕도 하고 때로는 폭력도 써요"라고 어떤 점잖은 남자 또는 여자가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하자. '진실'을 말하긴 했지만 이는 '거짓말'보다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황우석 박사는 아마 이 '진실과 거짓'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진실'을 말했을 때의 파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다보니 점입가경이 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USC의 풋볼 스타였던 레지 부시는 부모가 아마추어 선수인 아들의 능력을 이용해 불법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음에 따라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는 "부모의 재정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에서 살던 부모가 70만 달러가 넘는 고급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그 뒷배경을 큰아들이 모를 리 없다. 부시는 앞으로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부시가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를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진실'을 고백하면 이 일과 상관없는 소속학교(USC)가 엉뚱한 피해(2005년 성적 몰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을 놓고 고민할 때 이것이 '정의와 평화(질서)'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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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4장

누굴 내 집 안으로 들일 것인가

지난 밤에 꿈을 꿨습니다. 저는 집 문 앞에 서 있었고 하나님은 저에게 아들 세 명 중 한 명만 집 안으로 들여 보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들들의 마음 가짐을 살펴본 후에 들여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왜 꼭 1명일까 3명 다 들여보내면 안 될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들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이 집으로 들어올 자격이 어떻게 있니?”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아들은 말합니다. “저는 밖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어요. 착한 일도 많이 했구요. 당연히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아들은 말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습니다. 세상이 다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버지는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 아들이 말합니다. “저는 온갖 범죄를 다 저질렀어요. 죄송해서 아버지. 부끄러우시죠. 그런데 저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요. 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아들이 두 명이거든요. 갑자기 아들이 세 명이 됐고 아들 중 한 명만 집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꿈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입장에서 세 번째 아들을 집 안으로 들여보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아들이 집에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자는

잠에서 깨어 로마서 4장을 읽는데 세 번째 아들이 진정으로 믿음을 가진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세상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보다는 당신을 중심에 두는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인간의 업적은 하나님께는 그닥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전 우주에 큰 변화가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업적은 인간들만이 박수를 치는 일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잘못 오해를 하게 됩니다. “열심히 사는 게 잘못됐다는 말인가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물론 그건 아닙니다. 하나님은 흑백논리를 펼치시는 분이 아닌 것 같아요.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죠. 무엇을 더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입이다.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똑같은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4장에서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저는 불의합니다. 저 같은 자를 의롭게 하시려는 주님을 이 세상의 중심에 두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45). 단순히 말만 하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믿는 자를 찾는 것이죠.

하나님의 커트라인은 믿음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많은 업적을 쌓은 분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을 열심히 살았고, 많은 업적을 쌓았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둔 분들은 물론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분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둡니다. 내가 잘나서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품삯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로마서 44).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쓰는 의도를 파악하시겠습니까? 로마서 3장 나눔 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커트라인을 믿음으로 두셨습니다. 공로,. 행함, 업적은 보너스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없는 공로, 행함, 업적은 헛고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봉은 없고 보너스만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율법과 행동을 강조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425)



믿음과
100m 달리기 비유

우리의 의로움은 믿음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로마서 3장에서 나눴던 순 진짜 믿음입니다.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공로, 행함, 업적, 도덕, 율법을 중요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믿음을 더 우선으로 두셨다는 것 입니다. 이 모두가 연결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피니시(finish)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100 m 달리기를 합니다. 피니시 라인을 10초로 통과했습니다. 대단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중간부터 뛰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점이 다르면 10초 기록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100m 15초로 통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출발을 제대로 했고 좀 늦지만 피니시 라인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대기록은 아니지만 기록은 인정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출발도 제대로 하고 피니시도 잘했는데 빨리 달리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습니다. 이것은 부정 레이스가 되고 기록은 모두 박탈됩니다. 여기서 100m 달리기의 출발점은 믿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기록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서 잘 마치면 늦든 빠르든 기록은 인정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출발되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기록은 박탈당하게 됩니다.  업적, 공로는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100m 경기에서 부정출발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시 출발하기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업적, 공로, 기록은 다 무시하고 다시 출발하길 바라십니다. 믿음이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정당한 출발. 율법을 완성한다는 것은 바로 정당한 출발을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정당한 출발을 할 때 100m 기록이 인정되듯이 말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피니시 라인을 좋은 기록으로 통과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적용

내가 부정출발을 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 기억이 나에게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원점으로 돌리셨던 하나님, 나는 그분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삶에서도 나는 부정출발을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믿음으로 출발해야 피니시 라인에서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하실 것이다. 나는 믿음으로 출발하고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Think Deeper

내향적인 사람에게는 새롭고도 철저하게 행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깥이나 에 계신 하나님은 많은 세속적 조직들 속에 묻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내면에 계신 하나님께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밖에 계신 하나님이 사랑의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경험될 수 있는 것처럼, 내면에 계신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적 생명의 원천일 뿐 아니라 태초의 혼돈처럼 엄청난 혼돈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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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Yang
    2009/04/18 18: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요즈음 경제상황이 엄청나게 나빠서 너 나 할 것 없이 고통을 받고있읍니다. 부동산 시장이야말로 가장 영향을 받고있읍니다. 거래가 힘든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은 'buyer's market'입니다.

    박병기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제 생각해 보았던 '믿음은 seeker's market'이 다시 생각납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말씀 중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받아드리고 이겨 나갈 힘을 찾는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2. 2009/04/18 20: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Seeker's Market. 구하는 자를 찾으시면 하나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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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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