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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19-A-1797M-034 by US Army Korea - IM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우리가 보통 원수(enemy)’라고 말하면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원수는 나와의 관계에서 뭔가 맞지 않아 원수가 된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객관적인 원수가 아닐지라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수에 대해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원수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이런 원수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구약의 하나님도 반드시 쳐서 없앨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 무리를 쫓아내는 장면이 신약 성경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0장에 이러한 원수에 대한 지침을 내립니다. 전쟁을 하도록 합니다.

신명기 20장에 두 종류의 원수가 모두 나옵니다. 203절에 나오는 원수는 첫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원수와 싸움을 할지라도 평화를 위해 중재의 제안을 할 것을 설교자 모세는 명령합니다. 2014절에는 원수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바로 두 번째 종류의 원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민족에게 이 두 종류의 원수 성향이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종류의 원수가 되면 우리는 제 명대로 살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종류의 원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도록 선택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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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ome lebanner pre-fight by tdub303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K1이 요즘 인기를 끄는데 K1에서 상대는 일단 적(enemy)이고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규정 안에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규정 밖의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적에게 승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승리 후에는 적에게 격려하고 적와 악수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싸우느라 수고한 적에게 격려를 하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카에다는 서방 세계의 적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들의 폭탄 테러, 자폭 테러는 반드시 막아야하고 그들에게 대적해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신명기 20장 초반에 나오는 표현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들은 이겨야할 원수인 동시엔 땅을 얻으면 안 되는 원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왜곡하여 세상에 전하기 때문입니다. ‘성스러운 전쟁을 외치며 그들은 오늘도 테러를 자행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이것은 왜곡된 신이고 결론적으로 다른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 강호순, 잔인한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은 어떤 원수일까요. 그들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원수입니다. 사회의 적입니다. 그들은 또한 사탄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적입니다. 사회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수 없는 적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민족이나 집단이 아니고 개인이기에 격리 수용되어 사랑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격리됨은 두 종류의 원수 짓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도소 수용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 이 원수들을 사랑하는 간접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억울하게 잡혀 들어간 사람을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교도소의 재정이 궁핍하다고 이들을 조기 출소시킨다든가 이들에게 똑같은 권리를 다시 준다면 이는 결국에는 원수를 사랑하지 않는 행위가 됩니다.

사랑은 하고 싶은대로 아무렇게 하게 내버려두는 게 아닙니다. 오늘 운전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데 둘째 아이가 자동차 뒷쪽의 창문을 갑자기 열며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해 문을 닫으라고 했고 창문을 마음대로 열지 못하도록 잠금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는 둘째 아이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둘째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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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eria HDR by Davic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교도소도 그런 개념일 것 같습니다. 교도소 밖으로 나오면 많은 사람을 너무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러는 중에 착한 심성을 갖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원수를 밟아 이긴다는 말은 그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는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개념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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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0/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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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원수때문에 헷갈립니다.
    어디까지가 사랑인지 그렇다면 사탄이 하는 일은...명확한 글, 감사합니다.
    • 2009/10/23 11: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주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 씨(이영애 분)는 감옥에서 빨리 풀려나기 위해 신실한 신앙인인 것처럼 위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 후 자신을 도왔던 목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감옥에서 형을 치르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그리스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친절한 금자씨
감독 박찬욱 (2005 / 한국)
출연 이영애, 최민식, 권예영, 김시후
상세보기

소위 말해 용팔이로 불리는 김용남 씨와 살인마 강호순이 요즘 성경에 빠져 산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쇼 하고 있네~~” 이들은 영화 속의 금자 씨처럼 쇼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는 일입니다
.


본인들도 워낙 급하다보니 이게 신앙인지 희망사항인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실까? 용서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실한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축출에 나섰던 자가 바로 바울입니다. 오늘날 사도 바울로 알려진 그 바울은 예수쟁이들을 무척이나 싫어했고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사람이 생기도록 한 원인제공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쓰셨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개하자 당시 사람들도 쇼 하고 있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바울을 슬슬 피해 다녔습니다.

강호순도 용팔이도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용서를 받고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댓가만큼은 톡톡히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받고 구원은 받겠지만 정의를 위해 치러야 할 댓가가 분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것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바울도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강호순이 용팔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 있는 것입니다. 강호순의 경우에는 평생 감옥에서 무기수로 살면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정의인 것입니다. 사형을 당해버리면 어떻게 대가를 치릅니까.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했다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이 땅에서 그래야 합니다.


밀양
감독 이창동 (2007 / 한국)
출연 송강호, 전도연, 조영진, 김영재
상세보기

영화 밀양에서 남자 아이를 유괴해 죽인 후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 아이의 엄마(전도연 분)에게 나는 이미 용서 받았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분노했습니다. 이유는 정의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대가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 사랑의 빚을 진 자는 그에 대한 정의의 빚을 진 자입니다. 빚 진 채로 주님 앞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빚을 갚기 전에 우리는 빚을 졌는지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받아들이며(157),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그의 약속을 확인시켜주는 게(158)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심을 받아들인 자는 믿음을 갖게 되며 기쁨과 평화를 그 죄인에게 주실 것이고(1513) 성령의 능력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감사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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