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5일자 미주 중앙일보 종교면에 실린 글입니다.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짝사랑의 경험이 있다. 나 역시도 결혼하기 오래 전에 한국에 사는 어떤 여학생을 짝사랑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에서 지내면서 좋아하기 시작해 이후 무려 6년 동안이나 얼굴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좋아했고 미국으로 이민 온 후 2년째 되는 해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모습도 가물가물한 사람을 짝사랑하고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안다.

8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전화통화도 해보지 못한 여자를 짝사랑함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즘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제대로 대면해보지도 못했고 성경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던 하나님을 사랑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분을 사랑한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데 그와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고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를 사랑한다. 왜 그를 사랑할까.

그냥 좋은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냥 좋은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면 때로는 심장으로 대화할 기회도 있다. 오디오나 비디오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가슴에 대고 속삭이시는 그분의 기운이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녀의 졸업 사진 한 장으로 그리움을 달랬던 것처럼 그의 발자취가 남겨진 성경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빨리 보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날을 숨죽이며 기다려야 한다. 그를 만나는 시간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분은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대신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게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리워하는 분 대신에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분이 원하시니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삶에 찌들어 그에 대한 그리움도 식을 때가 있고 그분의 존재마저도 의심할 때가 있다. 과연 나를 정말 기다리는지 정말 계시긴 한지 그에 대한 족적이 믿을만한 것인지 등에 대해 잠시나마 의심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그리워하는 DNA가 심겨진 것 같다. 어릴 적 짝사랑녀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창조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같다. 8년 동안 기다렸던 그녀를 만난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 말을 했더니 아내는 "심장이 터지기 전에 나에게 얻어터지고 싶냐"고 말해 우리는 5분 동안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는 이 말을 나누며 한바탕 천국에서 경험할 폭소로 쏟아지는 엔돌핀에 즐거워했다.

나의 짝사랑은 8년 동안의 기다림이었으니 얼마나 긴 여정이었던가. 이보다 더 긴 기다림 끝에 하늘에서 만날 그분을 보게 될 순간의 느낌은 그것에 100배 1000배 10000배 더 환희에 휩싸일 것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늘에서 만날 그 분은 나보다 앞서 나를 짝사랑했던 분이다. 그리워하며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만나게 될 그를 그리며 2010년에는 더욱 그가 주실 일에 매진하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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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e.attard.bezzin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성공을 위해 실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란 말에는 어폐(語弊)가 있다. 이처럼 아이러니인 말이 어디 있을까?

여기서 '성공'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성공'이고 '실패'는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의 '실패'이다.

실패는 그러나 한 차원이 높은 세계에서는 '성공'으로 여겨진다. 결국 높은 차원에서는 실패=성공인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은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된다. 즉, 이 경우엔 성공=실패가 되는 것이다.

'실패=성공'이라고 할 때의 실패는 내 양심에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내 이웃이 피해를 보는 것이 싫어서,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실패이지만 곧 성공이다.

내 양심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이 박수를 쳐주기 때문에 성공을 했을 때 그 성공은 한차원 높은 세계에서는 실패가 되는 것이다.

결국 고차원에서 실패는 성공인 것이다. 인생의 실패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 생각이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지하철 안에서 마치 미친 노인처럼 통일과 예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그를 실패자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였다.

예수는 인간의 눈에는 실패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성공한 존재였다. 예수의 제자들마저 잠시 예수를 실패자로 보지 않았던가. 그는 인간에게는 실패였지만 하나님에겐 성공을 거둔 존재였다.

시장 바닥에서 하루 몇 천 원씩 벌었던 할머니가 수천만원을 사회에 기부했을 때 그는 주변 인간에게는 실패자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높은 차원에 있는 분께는 성공한 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기왕이면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성공이 아니면 그것은 곧 실패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다. 그것은 낮아짐과 순종의 자세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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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apel: (채플)
by Max Lucado (
맥스 루케이도), 번역=밝은터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I never saw sad men who looked.. by Fergal O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I am not worthy; I cannot answer you anything, so I will put my hand over my mouth. (Job 40:4)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으로 을 막을 뿐입니다 (욥기 404)

The phrase for the chapel is
Hallowed be thy name. (예배의 캐치프레이즈는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This phrase is a petition, not a proclamation. A request, not an announcement.(
 구절은 청원이지 선포가 아니다요청이지 발표가 아니다)

Hallowed be your name. We enter the chapel and beseech,
Be hallowed, Lord. Do whatever it takes to be holy in my life. Take your rightful place on the throne. Exalt yourself. Magnify yourself. Glorify yourself. You be Lord, and Ill be quiet.(“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예배당으로 들어가 주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을 탄원한다. 내 삶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 당신히 하고자 하는 것을 하십시오. 당신의 권좌에 오르시고, 높임을 받고 광대함과 영광을 받으십시오. 저는 그저 잠잠히 있겠습니다)

The word hallowed comes from the word holy, and the word holy means
to separate. The ancestry of the term can be traced back to an ancient word which means to cut. To be holy, then, is to be a cut above the norm, superior, extraordinary. Remember what we learned in the observatory? The Holy One dwells on a different level from the rest of us. What frightens us does not frighten him. What troubles us does not trouble him. (Hallowed라는 단어는 holy에서 나왔다. holy라는 단어의 뜻은 '분리하다'라는 의미다. 고대 언어에서는 '구분하다'라는 의미다. 거룩함은 인간의 규범과 지위의 커트라인 위에 있다. 거룩한 자는 우리와 다른 레벨에 거하시고 우리에게 두려운 것은 그에게 두려움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문제는 그에게 문제가 아니다.)

When you set your sights on our God, you focus on one
a cut above any storm life may bring. (당신이 하나님께 눈을 돌릴 때, 인생의 폭풍우 위의 그분에 집중하게 된다)

Like Job, you find peace in the pain. (
욥처럼 당신은 고통 중에 평화를 찾고)
Like Job, you cover your mouth and sit still. (
욥처럼 입을 막고 잠잠히 있게 된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 46:10). (잠잠하라.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This verse contains a command with a promise. (
이 구절은 약속과 명령이 함께 있다)
The command? (
명령?)
Be still. (
잠잠하라)
Cover your mouth. (
입을 가리라)
Bend your knees. (
무릎을 꿇어라)
The promise? You will know that I am God. (
약속? 너는 내가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In the midst of your daily storms, make it a point to be still and set your sights on him.(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을 생각하라)

Let God be God. Let him bathe you in his glory so that both your breath and your troubles are sucked from your soul. Be still. Be quiet. Be open and willing. Then you will know that God is God, and you can
t help but confess, Hallowed be thy name.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게 하라. 그가 당신을 영광으로 씻게 하고 당신의 숨소리와 문제가 영혼 속에 사라지게 하라. 잠잠하라. 조용하라. 문을 열어라. 뜻을 품어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이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회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From The Great House of God
Copyright (Thomas Nelson, 1997) Max Lucado
맥스 루케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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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iant Twins reprise
The Giant Twins reprise by danorbi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일본의 유명한 '머니 카운슬러'인 혼다 켄은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러나 '무턱대고 돈 많이 버는 방법'보다는 행복하게 돈버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부자가 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겼는데 어느 날 유대인 대부호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르신 같은 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는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어르신이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겠습니다.”(혼다 켄)

유대인 대부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

“사랑, 우정, 즐거움, 마음의 평안을 잃지 말게. 인생에서 길을 잃어버려서도 안 되네. 자네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게. 자 지금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자문해 보게. 그리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게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는 소리를 느껴보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네가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네. 자네 심장이 번잡스러운 일상생활에 너무 시달려 조용한 소리가 사라져버린 것이지. 그럴 때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심장 소리가 자네의 인생을 인도하고 눈앞의 길을 열어 펼쳐줄 것이네.”

혼다 켄은 이 대화를 한 후 행복한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강연을 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좀 어렵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제가 만나본 대부호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근심과 걱정은 제쳐두었습니다. 감사하면서 걱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혼다 켄의 부에 대한 연구가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행복한 부자가 된다는 것. 굉장히 성경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감사하다보면 부자가 안 되더라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는 보너스처럼 찾아온 것인가 봅니다.

부자들 중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가난하면서 행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감사하게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자인 것 같습니다. 특히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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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Cosechando trigo / Harvesting wheat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일꾼이 없어서 걷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추수할 곡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문을 향해 하루하루 아름답게 살아갈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곡식이 많은 것은 아마 큰 밭일 것입니다. 작은 밭에서는 농사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곡식의 양이 제한돼 있습니다.

큰 밭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곡식이 자라고 있지만 이를 거둬들이는 일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꾼하면 교회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그 분들도 귀한 일꾼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은 작은 밭일 뿐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밭을 가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밭을 가꿀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걷어들이는 곡식은 적은 것입니다.

큰 밭을 가꿀 일꾼이 필요한데 큰 밭에서는 추수보다는 내 욕심을 채우기에 바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히려 큰 밭에서 추수를 외면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실 겁니다. 교회 안에서는 추수하면 작은 양이라도 확실히 곡식을 얻을 수 있기에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밭에서 땀을 흘릴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큰 밭에서 추수할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청렴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정의를 위해 자기 몫을 하고, 자기를 낮추고, 넉넉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꾼이 많을수록 추수할 곡식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 밭을 가꾸는 일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넉넉한 재산이 있지만 사치를 하지 않고 여윳돈으로 배고프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람은 바로 큰 밭을 가꾸는 일꾼입니다. 인종 차별을 당하는 자, 그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서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또 그것이 시스템화 되지 않도록 열심히 땀을 흘리는 자가 큰 밭의 일꾼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제 몫을 하는 사람이 바로 일꾼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도 일꾼입니다. 그러나 작은 밭에서 적은 곡식을 얻는 일꾼입니다. 물론 의미있는 일입니다.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일꾼은 대부분 이렇게 교회 안에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일꾼인데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교회가 일꾼의 개념을 잘못 해석하고 가르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일꾼을 찾으면서 동시에 교회 밖에서도 일꾼을 찾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교회 밖의 큰 밭에서 나오는 곡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한 곳에 고이면 썩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아름다운 물이 세상 밖으로 흘리지 못해 썩는 냄새를 풍겼습니다.

물론 세상 밖으로 물을 내보내려면 쉽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꽉 잡은 세상이기 때문에 깨끗한 물은 곧바로 구정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정물을 생수로 만들 수 있는 말씀이라는 정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나쁜 성분을 빼어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잠시 구정물과 섞여도 금세 분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마태복음 9:38) Then He said to His disciples, "The harvest truly is plentiful, but the laborers are few. Therefore pray the Lord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into His harvest."

추수할 일꾼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고통을 받고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고 상처받고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의 미완성적인 존재를 내어 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쓰십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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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2010/01/05 19:00
게으름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김남준 (생명의말씀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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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각주의 글씨 크기를 바꾸어야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방법으로 하나하나 각주를 찾아 들어가 원하는 크기로 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시 저를 만나기 위해 들렀던 청년이 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다가와 마우스를 가지고 몇 번 클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과 몇 초 만에 백여 개의 각주들이 한거번에 다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지혜롭지 못하면 아무리 부지런해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게으름'. p.54)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부지런함과 지혜로움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지혜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책에는 또한 게으른 자의 특성으로 '고집'을 꼽고 있습니다.(p.158-164) 고집과 소신은 다른 것이며 게으른 사람에게서 지독한 고집이 보인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이라면 게으른 자의 성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바삐 움직인다고 부지런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도움이 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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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like no one is watching, love like you'll never be hurt,sing like no one is listening,and live like it's heaven on earth."- William Pur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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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will be impossible with God (Luke 1:37)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 분이 연약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난 것은 역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처럼 역사 밖에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가 하신 일은 너무나 놀랍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그분을 믿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마음속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서 기적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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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만남은 점점 '번개 만남'이 되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 쉽다. 그래서 부부 관계도 쉽게 결정되는 것 같다. 부부의 관계가 쉽게 결정되니 다른 관계도 너무 쉽게 결정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만은 신중했으면 한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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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논쟁을 할 때 나는 보수주의자다, 나는 자유주의자다라고 말을 한다. 다 좋다. 다 중요하다. 서로 보충의 관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살고 있는 가이다. 지금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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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서 지난주 설교를 듣는데 설교자는 "교회 사역자는 첫째, open-minded여야하고 둘째, teachable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목회의 환경은 신학교 교육이나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환경이기에 open-mind가 없으면 제대로 도울 수 없고,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있지만 항상 배움에 대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리더나 기독교 리더들이 이미 굳어진 생각으로 두 가지 성품을 배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은 분명합니다. 자기의 사고의 틀에 갇혀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목회자이든 비목회자이든 open-minded와 teachable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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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란?

2009/12/17 07:07
하나님이 받으셔야 예배다. 내가 아무리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하더라도 받는 분이 받지 않으시면 소용 없다-유진소 목사(ANC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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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선교란 거창한 게 아니다. 센세이션한 글을 읽지 않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글을 읽는 것. 그것이 인터넷 선교다. 낚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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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화내지 않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낸 결론 부분입니다.

Mad world
Mad world by alles-schlumpf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1. 화를 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화내지 않기 훈련을 하려고 결심하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화난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2. 얼마 안 있으면 마음 속에서 화가 우러나올 것이다. 이 때 산상수훈의 팔복을 암송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여기서 강조점은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함'에 있다. 내 속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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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도 들끓는 화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이제는 애통해하는 단계다. "애통해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나는 이렇게 연약한 인간이다. 내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이렇게 부족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4. 애통해하면서 기도를 한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온유함이 마음 속에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한다.


Water Fountain and a boy
Water Fountain and a boy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5. 온유함이 내 안에 가득차게 되면 나는 의에 주리게 된다. 내 안에서 훈련된 자아는 타인을 보게 된다.

 

6. 이웃의 모습을 보며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나도 저런 모습인데, 나도 저렇게 연약한 존재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7. 긍휼한 마음이 속사람을 지배하면 마음이 청결하게 되고 화평케하는 자로 거듭난다. 이때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계속 몰려올 것이다. 핍박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이겨내면 화내지 않기 프로젝트는 사실상 완성된 것이다. 이 훈련을 평생하다보면 단순히 화내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환(transformation)을 주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훈련은 수동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밝은터] 


(기도) 내가 하려고 하니 되질 않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내 본성이 드러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으로 초대합니다. 전환을 꾀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소서. 수동적이고 머리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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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UEish Monday~
~ BLUEish Monday~ by ViaMoi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내 마음속의 거울을 바라 볼 때면

나의 작아져 버린 모습에 놀라곤 해요

사랑과 소망이 있던 나

믿음과 진실을 찾던 나

나의 모습은 세상의 어둠속에서

닦을 수 없는 거울이 되었나


나의 지쳐 있는 그대로를

당신께서 받아 주세요

나의 상처로 얼룩진 꿈의 거울을

영원한 당신의 사랑으로

닦아 주세요

당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When I look into the mirror of my soul

I find myself so small

Where are my hopes and dreams?

Has the world slowly clouded over

my quest for truth and love

what will it take to restore my reflection


Just take me as I am

Wash away the broken dreams from my heart

with Your pure love, with Your pure heart

Now I am waiting for Your touch


박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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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지만

야망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비전은 세상과 이웃을 생각하지만

야망은 나 하나 만을 생각한다.


비전은 성숙함에서 비롯됐지만

야망은 교만함에서 비롯됐다.


비전은 하늘의 음성을 들음에서 시작됐지만

야망은 자신의 음성을 들음에서 시작됐다.


비전은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내지만

야망은 가치 없는 일을 만들어낸다.


비전은 아름답고 착한 끝이 있지만

야망은 파멸과 허무만을 남기게 된다.


비전은 지혜로움이지만

야망은 어리석음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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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과 맞서기 위해 다가온다면 당신이 기억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1. 그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지 말라. 그들이 목소리를 높일수록 당신은 좀 더 침착해지라


2. 반응하기 전에 먼저 귀를 기울이라. 대답을 하기 전에 그들이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라


3. 당신의 관점을 조용히 설명하라. 만약 그것이 상대방의 견해와 다르다면 부드럽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분쟁에 관한 당신의 의견을 설명하라


4. 도움을 구하는 것에 동의하라. 만약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중재자나 서로를 알고 있는 친구나 존경할만한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라


5. 성급하게 굴지 말라. 만약 그들이 중재자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좀 필요해. 다시 오겠어”라고 제의하라.


6. 친절한 방법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라. 당신이 그 순간에 할 수 없다면 다음 기회를 사용하라


7. 당신의 잘못을 인정하라. 당신이 분명히 잘못 했다면 잘못 했다고 사과하라.


8. 다른 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다루라.


9. 조심스럽고 신중하라. 불행하게도 당신의 너그러움과 신중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사소한 짜증으로 사람을 죽이는 폭력이 난무한 곳임을 기억하라.


10. 마지막 수단으로서만 권위에 의존하라. 폭력이나 이와 유사한 다른 상황이 예견되
지 않는 한 경찰을 쉽게 부르지 말라.


-감동을 창조하는 인간관계/윌리암 J. 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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