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유

2010/05/18 14:53

극악무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인생을 태어난 시점부터 상세히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부모는 그래서 극악한 자식을 여전히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천하의 몹쓸 살인자라 할지라도 그 어미가 살인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뱃속에서부터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고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잭슨 (Michael Joseph Jackson) / 외국가수
출생 1958년 8월 29일
신체 키180cm
팬카페 Moon wal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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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에 마이클 잭슨, 마이클 조던, 그리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리서치를 해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많이 욕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구요. 욕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대체로 자신의 이익에 과 관심에 따라 달라집니다. 개인적인 이익과 관심이 떠나면 좋아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들의 인생을 어렸을 때부터 쭉 들으면 사랑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들이 왜 잘못을 했는지, 그들이 왜 뛰어난 인물이 됐는지를 알게 되어 그들을 더욱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조혜련 / 개그맨,국내가수
출생 1970년 5월 29일
신체
팬카페 조혜련 공식 팬클럽 “ 루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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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이라는 연예인은 너무 바빠서 딸 아이가 엄마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는데 얼마전 자서전을 딸(12세쯤 된 것 같습니다)이 대필하면서 엄마에 대해 다르게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바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의 인생을 어렸을 때부터 듣게 되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질 않습니까?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들어보십시오.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물론 우리의 사랑은 제한된 사랑입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체가 된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잉태된 순간부터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거죠.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 삶을 들여다보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었는데 왜 그런 악한 생각을 갖게 됐는지조차도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기에 너무나 쉬운 방법으로 구원의 모티브를 제시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알 수 없으니 방황은 계속 진행됩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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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grace
    2010/05/19 16: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맞습니다! 알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비해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제한적인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구요, 그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구요...
  2. 밝은터
    2010/05/23 15: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댓글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우리의 사랑. 비교가 되네요...

영어 단어 중 'brainwash'의 사전적인 의미는 '세뇌'. '세뇌'의 의미를 찾아보니 '본디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개조한다'라고 나와 있다. 몇 년 전에 CNN닷컴의 톱기사로 '어린이 용병'이라는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전 세계 어린이 용병(child soldier) 25만 명에 이른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도덕과 가치관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이에게 '총으로 적을 죽이라'는 세뇌를 하면 그들은 어른보다 더 깔끔하게(?) 상대를 제거한다고 CNN은 보도했다. 어린이의 나이는 8세부터 10대 초중반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2007년 한국의 유명 탤런트 정다빈양이 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가수 유니가 자살한 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은 두 배였다. 이들은 왜 자살을 했을까. '세뇌'의 영향인 것 같다. 그들은 이 세상의 '세뇌'로 인해 '본디 가지고 있던 생각'이 깨끗이 청소(wash)됐고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했다. 바로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사상이다. 지금 돈을 모아놓아야 미래가 안정된다는 그런 사상이다. 그들은 그러한 사상에 '세뇌'되어 불안해했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비난에 민감했고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

 

 영화 배우 안성기씨는 당시 일간지 칼럼에서 "인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는 게 연예인의 운명이지만 모든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일 자체를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연예인 후배들에게 강조한 바 있다.

 

소위 '성공'한 자만이 인정을 받는 연예계에서 조금만 인기가 떨어져도 불안해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계도 비슷하다. 인기있던 선수가 인기가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포츠 스타들 중 팬들의 박수가 사라지면 공허한 마음에 자살하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 선수는 상당수다. 

 

 정다빈, 유니의 자살 사건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웠던 사실은 이 두 사람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이다. 특히 정다빈은 매니저 말을 빌리면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는 '절실한' 신자 정다빈은 교회에서 '성공에 대한 세뇌'를 재확인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요즘 교회를 가보면 대부분(그렇지 않은 교회도 물론 있다)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게 신의 축복이라고 한다. 물론 축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물질적 축복이 지나칠 정도로 강조돼 신자들은 '물질적 성공을 다짐하며(!)' 교회 문을 나선다. 정다빈은 어쩌면 그 물질적 축복 메시지에 재무장되어 교회 문을 나섰을지 모른다. 두 번째는 교회에서 청빈과 작은 것에도 감사한 삶을 이야기했지만 본인이 워낙 '성공 신드롬'에 세뇌되어 그런 메시지는 들어도 들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설교 메시지가 '성공 신드롬' 메시지를 밀어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고전 끝에 축복을 받은 이들을 여러 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이고 대부분의 인물은 어려움을 견디고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 그때만 조금 견뎠더라면 좋았을텐데 견딤의 미학은 교회를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기독교 성서와 기독교 역사를 보면 축복의 신학보다 인내의 신학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견디면 반드시 축복은 기다린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옆에 신문 또는 잡지가 있다면 한 번 열어보자. 모두 소위 말해 성공한 자의 성공 또는 실패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결국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성공한 유명인의 실패담이다. 심지어 신문의 종교면에도 성공한(?) 자의 스토리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세상 사람 대부분이 성공해야 한다는 '세뇌'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세뇌되어야 하는가. 오늘 하루 우리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하며 세뇌를 당해야 하는가. 어떤 세뇌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은 우리 각자의 선택이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권이 분명히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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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 개그맨
출생 1972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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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이자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 씨가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팬들과의 만남에서 한 팬이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내다가 어떻게 그렇게 잘 풀렸냐고 질문하자 유재석 씨는 무명시절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잘 되어도 내가 잘나서 잘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답했습니다.

유재석 씨는 종교인이 분명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던 것 같습니다. 철저한 무명 개그맨이었던 그가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는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신의 섭리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유재석 씨는 착한 연예인, 선행을 베푸는 연예인, 동료를 세워주는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셈이 굉장히 빠르신 분입니다. 빠른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시죠. 우주를 설계하셨으면 셈의 정확도와 계산 능력이 대단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힘을 줘서 잘 되었는데 인간이 그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원치 않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수만 명의 군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게 한 것도 인간의 노력에 의한 전쟁의 승리가 아닌 하나님이 힘주심으로 가능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의 병사 300명은 막강한 수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무찔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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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길 원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그것을 자꾸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의 능력을 힘입어 살면 너무 좋은데 인간은 자기 스스로 살아내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담이 그 대표주자였죠. 또한 바알과 같은 자신들이 만든 신을 섬기며 사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용하려고 하자 기드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왜 우리 민족에게 그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 다른 민족에 핍박을 받았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가라, 내가 너를 지명하고 불렀다. 미디안이 너의 손에 있다고 우문현답을 하셨습니다. 답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반역 행위, 불손 행위는 심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미 불신앙이 있었기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해 미디안 민족을 누르는 것에 대해 의심을 했습니다. 그는 양털 위에 이슬이 맺혀지도록 하시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믿겠다며 시험을 해봅니다. 신실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두 번째 시도를 합니다. “양털 위에만 이슬이 맺혀지지 않도록 하고 나머지에는 이슬에 맺혀지게 해달라고 시험을 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신실함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왜 기드온이 하는 말대로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이 워낙 불신앙으로 가득했기에 그런 환경에 있던 기드온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하셨던 것입니다.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인데 이를 뒤집으면 Stand under입니다. 아래서 서는 것이죠. 하나님은 기드온과 이스라엘 민족 아래에 서서 이런 사인(sign)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다시 첫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는 유재석 씨가 국민 MC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섭리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무대 울렁증이 있었던 개그맨이라 무대에서는 웃기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약한 그를 들어서 우주를 창조하신 분께서 쓰셨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유재석 씨가 뭔가 뛰어나니까 그렇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72절과 3절을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여전사 드보라를 쓰신 창조주, 가족 내에서도 별볼일 없었던 기드온을 쓰신 창조주, 그리고 유재석 씨를 쓰신 그분이 역사를 통해 살아계시고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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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Hyun Kim (LPGA)
Mi Hyun Kim (LPGA)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국의 가수 김장훈 씨가 자신은 월세집에 살면서 월 1500만원씩 9년 동안 30억을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김장훈 씨는 지난 2001년 경기도 일산의 '청소년을 위한 교회' 설립에 앨범 수익금 9억 원 등 12억 원을 기부했고 사회에서 소외된 불우이웃을 위해 금전적으로 심정적으로 도움을 줬던 연예인이다. 그가 선행연예인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내가 진짜로 놀랐던 점은 그 기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모 신문사 웹사이트에는 김장훈 씨의 선행 관련 기사에 대해 약 245건의 댓글이 올려졌는데 100%에 가깝게 칭찬 글이 이어졌다. 인터넷 세계가 냉소적인 곳임을 감안하면 100%에 가까운 칭찬 글이 올려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찬성표를 많이 받았던 네티즌들의 댓글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말 소명이 무엇인지 잘 아는 멋진 분입니다."(조상환) "김장훈씨! 정말 멋집니다. 액수도 그렇지만, 그 꾸준함에 박수를 보냅니다."(김춘호) "선행을 한다는 많은 책을 접하지만 이 위대한 한 가수의 행동은 어디서 그 원천이 나온 것인가. 새삼 한 가수의 위대한 삶의 지표를 느끼면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갖게 합니다."(박중구)

니는 245개의 댓글을 모두 읽었다. 실로 오랜만에 인터넷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 김미현 선수가 선행의 주인공이 됐다. LPGA 투어 셈 그룹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미현은 상금의 절반(10만 달러)을 캔자스 토네이도 이재민을 위한 성금으로 내놨다. 김미현의 선행 사실은 미 주류 언론을 통해서도 상세히 소개됐다. 골프와 스포츠 웹사이트에 이 내용이 AP 발로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의 반응이 있었는데 ESPN.com에 올려진 독자들의 댓글은 눈에 띄었다. ID portergolf인 누리꾼은 "캔자스 사람들은 '김미현'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김미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 같다"고 의견을 썼다. 다른 네티즌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다. 김미현은 자신의 조국이 있는데도 미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했다. 오늘날 많은 백만장자, 천만장자 스타들이 본 받아야 할 부분이다"(ID: rechnem)라고 김미현을 극찬했다. ID dejim73인 누리꾼은 "LPGA에 좋아하는 선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찾았다"라며 김미현의 팬이 될 것을 선언했다.

그런데 기부를 한 후 김미현의 설명이 걸작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돈을 벌었는데 정작 기부는 주로 한국에서만 했다. 이제는 미국에서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현은 한국에서 조용히 기부를 많이 하는 선수다. 그는 매년 수억씩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기부한 바 있다.

김미현의 기부와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선수들이 매년 수입의 일부를 모아 미국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내 한인 선수 이웃 나눔 재단' 같은 단체를 설립해 활동을 하면 어떨까. 미국에서 돈을 벌어 조국으로만 보내는 선수에서 현재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선수들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으면 한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돈을 많이 번 것에 대한 보람도 생길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좋은 일이고 축복된 일이다. 하지만 그 돈을 혼자만 가지려고 하면 이는 그 누군가를 축복의 반대 편에 서도록 만든다.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장훈과 김미현을 보면서 고개가 숙여진다. Thank you, Kims.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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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awal Bhutto Speaks At Press Conference

스포츠 스타들은 다른 분야의 스타 못지않게 이미지가 중요하다. 좋은 실력에 좋은 이미지까지 보태어지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천만 장자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주로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다. 팬들 입장에서는 어떤 렌즈를 통해 선수들을 보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렌즈는 곧 언론이다.

뉴욕을 예로 들어보자. 뉴욕 스포츠 팀들과 선수들은 주로 뉴욕 타임스라는 초대형 일간지의 편집국장과 일선 기자들이 가진 렌즈를 통해 이미지가 전달된다. 독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선수들의 이미지를 복사한다. 개인적으로 팀과 선수를 접할 기회가 있어서 나만의 렌즈로 그들의 이미지를 봤다면 다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이미지일 수 있고 더 나쁜 이미지일 수 있다. 물론 비슷할 수도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미 주류 사회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모 신문 구독을 중단했다. 이유는 그들의 렌즈로 세상을 보다 보니 ‘해석 방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이덴티티’가 변색되는 느낌이었다. 마이너리티를 은근히 무시하는 그들의 렌즈를 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고 그 신문을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그 신문에서 운영하는 웹진에서 기사를 검색해 읽는다.

어떤 분은 ‘우리가 미국에 동화되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강조하지만 아직은 미국이 아시안(영어를 아무리 잘해도)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숙한 단계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의 독특하고 깨끗한 렌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 우리의 눈길과 관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내린 중대한 개인적인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생부를 만난 토비 도슨은 몇 년 전 밝은터(이 블로그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찾는 입양아’로만 비치는 것이 싫고 부담스럽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의 렌즈는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토비의 가족과의 만남을 상세히 소개한 후에 렌즈의 각도를 틀어서 한국의 입양아 ‘수출’, 미아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다각화시켜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수년 전 수퍼보울 MVP 하인스 워드로 인해 한국의 혼혈인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바뀌었던 것처럼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확산했으면 한다. 입양아에 대한 관심은 결국 미혼모의 사회 문제와 문란해진 성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언론이 렌즈의 방향을 바꿀 때 그 렌즈를 그대로 따라가는 독자나 시청자 및 청취자는 새로운 방향에 관심을 두게 되어 있다. 하인스 워드의 한국 방문 이후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는 혼혈아의 이야기를 다룬 ‘깜근이 엄마’라는 특집극을 방영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특정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수정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렌즈가 필요하다. 렌즈의 역할을 하는 언론, 철학, 종교가 있고 ‘이 중에서 어떤 렌즈를 가진 언론(또는 철학, 종교)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있는 시민들이 있다. 대다수가 어떤 렌즈를 끼기로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도 바뀌고 세상도 달라진다. , 말하다 보니 렌즈 닦을 시간이다. 렌즈가 더럽네….[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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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신종플루로 잃은 탤런트 이광기 씨가 최근 모 방송에 출연해 개그맨 김구라 씨에게 쉬운 성경을 선물해줬습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 이렇게 썼습니다. "너에게 있어서 요즘 가장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성탄절 선물로 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자주 읽길 바란다."

이광기 씨는 아들을 잃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에는 배우 김명국 씨의 이야기가 초기화면 톱기사로 떴습니다.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 약속한 인터뷰 장소는 목동 CBS 건물이었다. 그런데 확인차 전화하니 도봉구 창동 순복음 한성교회 바로 옆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겨울 잔광(殘光)이 유리창을 물들이고 중랑천 바람이 그 빛을 흐트리던 날 그가 말했다.

"원래 말술이었습니다. 지금은 끊었어요. 신앙생활도 아들 때문에 하게 됐고요. 투병하던 말기 아이가 느닷없이 성경(聖經)을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엑스레이 찍을 때면 병원 내 교회를 지나야 하는데 자주 기웃거리기도 하고."

―혹시 바로 옆의 교회가?

"모처럼 나들이 나왔을 때 영길이가 이곳을 지목하며 '여기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지금 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입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25/2009122500462.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topheadline&Dep3=top


이들은 왜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너무 힘드니까, 종교의 힘을 빌린다고 나약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 덕분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할 때 강함되게 하시는 하나님. 이 말은 두 배우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너무 약해서 종교에 빠졌다는 차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해져서 강한 하나님을 만난 것, 그것이 바로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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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씨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
http://www.km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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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노승환) / 국내가수
출생 1972년 10월 10일
신체 키180cm, 체중70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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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이 신명기 26장에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신명기 26장에도 나타납니다.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데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레위인, 외국인, 고아, 미망인에게 수입의 일정량을 나누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표현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십일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사실 신약과 구약에는 이웃에게 소득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나옵니다. 이웃에게 나누자고 하면 공산주의라고 폄하하며 싫어합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쳤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텐데 요즘 한국이든 미국이든 소득을 이웃과 나누자고 하면 좋아하는 기독교 리더가 많지 않습니다.

말로는 나누자고 하지만 실제 그러한 법안이 상정되거나 시스템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려고 하면 공산주의라고 싫어합니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이 없는 분들이 소득을 나누자는 것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일부분만 너무 강조한 탓입니다. 대형교회의 경우 점점 부자가 되어 가는데 이웃에 대한 씀씀이는 박한 게 사실입니다. 헌금 대부분이 교회 시스템 유지에 사용되는 게 현실입니다.

하나님께는 돈과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는게 자연스러운데 이웃에게는 선뜻 그렇게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정혜영 / 탤런트
출생 1973년 12월 14일
신체
팬카페 정혜영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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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 국내가수
출생 1967년 8월 14일
신체 키186cm, 체중70kg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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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들어 기독교 일각에서는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힙합 그룹 지누션의 멤버인 션과 그의 아내인 정혜영 씨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CF 출연료 1억을 선뜻 내놓고 가수 김장훈 씨도 자신의 재산을 고아원에 끊임없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니 세상도 박수를 보냅니다. ‘개독교라는 말이 쑥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실천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돈으로 시간으로 십일조를 하게 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한 십일조도 강조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션, 정혜영 부부, 김장훈 씨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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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느낌님의 믹시

    2009/11/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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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티비에 션부부가 나오더군요. 그런 이웃 사랑은 자기 부인 사랑으로부터 했다는 데서 더 진가가 발휘되는 것 같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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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밝은터
    2009/11/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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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본 받고 싶은 부부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주 중앙일보 2009년 10월20일자 글입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큰 크기의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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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만이
    2009/11/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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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낮아지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Through The Cross
Through The Cross by losw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아끼고 기쁘게 생각하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혼란의 연속인 교회라 사도 바울의 특별 기도와 관심이 요청되는 교회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는 아닌 듯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아들이었던 에바브라가 골로새 지역에 세운 교회로 보여집니다. 가지 다른 상황을 보면서 그가 어떤 관점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비교하면 흥미롭습니다.

문제가 가득한 혼란의 교회(고린도 교회) 향해서 그는 질서를 강조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염두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더욱 깊은 은혜와 자유를 경험할 있도록 편지를 썼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대해서는 자신이 세운 교회가 아니였기에  일반적인 교리와 권면이 주를 이룹니다. 골로새 교회는 그리스도를 깎아내리며 율법과 전통을 중시하는 이단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바울이 세운 교회였더라면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같은 강한 어조로 글을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골로새서를 읽어보면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마치 신학교 교수가 모르는 교회에서 강의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골로새의 이단들은 유대 율법주의, 헬라의 철학, 동양의 신비주의를 모두 혼합했다고 학자들은 기록합니다. 실제 골로새서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엿보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이런 지경이면 그는 감정이 섞인 투로, 길고 장황하게 글을 썼을 것입니다. 골로새서를 그렇게 썼다면 아마도 골로새 교회의 반발이 있었을 것입니다.

비교적 점잖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같습니다.

빌립보서, 고린도전서, 골로새서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성경을 읽을 성경 저자의 상황과 독자의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간에 교류됐던 편지글을 읽는 21세기를 사는 독자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사도 바울의 편지글을 읽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멘토였더라면 나에게 어떻게 편지를 썼을까.” 내가 있는 교회에 편지를 썼더라면 어떻께 썼을까. 내가 속한 지역에 대해 뭐라고 편지를 썼을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오래전에 기록된 바울의 편지를 통해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바울) 읽는 (골로새 교회 교인) 그리고 글을 엿보는(?) (성경 독자)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재범 (박재범) / 국내가수
출생 1987년 4월 25일
신체 키174cm, 체중60kg
팬카페
상세보기

2PM 재범 군을 생각합니다. 마이스페이스라는 블로그에 친구와 사적으로 대화 나눈 어렸을 때의 글에 한국 전체가 들썩거렸습니다. 우리가 살펴봐야 것은 재범 군이 썼던 일종의 전자 편지 글은 친구에게 쓰는  사적인 글이었다는 것과 그것은 미성숙했던 10 중반의 어린 아이가 글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빌립보 교회,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읽도록 사적인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 교인이 많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사적인 편지라고 있습니다. 편지글이 정경이 되어 성경이 됐을 우리는 사적인 편지글을 보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글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마구마구 잡아넣는 사람이었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역사적인 기독교 선교사가 인물입니다. 그의 미성숙했을 때의 행동이 기록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도로서 선교일을 있었습니다.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적인 편지글을 성경 66권에 넣도록 하신 것은 우리가 글을 읽으며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용할 있는 근거를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교회에 글을 읽으며 과연 우리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석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닌 그대로 옮겨서 적용할 경우 상당한 무리가 따르고 진리가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우리가 사도 바울의 편지글을 우리 교회에 해석없이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편지글은 팩트(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러나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당시 사도 바울에게 주신 주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뜻을 헤아리면서 해석한 내용을 전할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를 자유케하지 않지만 진리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번째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성숙하지 않았을 때의 , , 행동을 갖고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매도하는 우리의 미성숙한 행동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과거 미성숙한 행동이 문제가 되어 그가 사도로서 일을 하지 못했더라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당시 그런 문제가 지적되었을 것입니다. 실제 바울이 변화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그의 회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그의 과오가 용서되었기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 이후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과거(!) 있던 사도가 사적인 편지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 같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골로새서, 빌립보서, 고린도전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실(facts) 보던 눈에서 진실(truths)이 발견될 것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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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6 - 빌립보 교회와 고린도 교회(1)-대형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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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365: SILENCE = DEATH
293/365: SILENCE = DEATH by malik ml williams [flickr-ing in and out] 저작자 표시비영리

성경을 읽을 때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글을 쓰는 밝은터에게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하나님의 성품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인공의 성품을 모른 채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면 전체 내용 파악을 하는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은혜, 자유, 질서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성품을 마음에 품고 성경을 읽을 때 오해가 덜 생깁니다.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은혜, 자유, 질서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강조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쓸 때는 질서를 많이 강조하는 듯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질서가 무너지니까 그런 어조로 편지 글을 씁니다. 그렇다고 은혜와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와 자유가 적절하게 포함됩니다.

신명기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질서가 강조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예수님을 초대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신명기 설교의 상황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면 은혜와 자유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숨겨진(?) 성품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을 읽을 때 무서운 하나님의 관점으로 읽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오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우리를 괴롭히는 하나님이 되면 메시지를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신명기 24장에는 여러 규정이 나옵니다. 이혼은 제한적으로 허용됐지만 이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 원래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일이었으며, 갓 결혼한 사람은 군복무에서 제외되며, 유괴범은 사형에 처하며, 문둥병에 따르는 의식이 있어야 하며, 적시에 품삯을 지불해줘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남겨둬야 할 이삭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 규정을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그대로 적용하면 어떨까요?

이 규정에서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입니다. 그리고 질서입니다. 첫째 남편은 여자에게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이혼증서를 써줬습니다. 그리고 둘째 남편도 비슷한 사유로 이혼증서를 썼거나 사망을 했는데 이 여자가 첫 번째 남편에게 가는 것은 가증스러운(abhorrent) 일이라고 합니다. 21세기의 상황에서는 참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가증스러운 것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이를 두 가지 의미에서 해석하는데 첫 번째는 남편이 여자가 싫어서 이혼증서를 써줬는데 다시 맞아들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가 다시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일로 여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여자에 대한 보호입니다. 여자가 함부로 다뤄지지 않도록 하는 보호법으로 보입니다. 정결하지 않은 여자는 돌로 치라는 규정이 당시에 있었기에 자칫 잘못 그런 여자로 몰려 죽음을 당할 수 있기에 보호하려는 규정으로 보입니다.

갓 결혼한 사람이 군복무에서 제외되는 것은 지금 적용해도 좋은 내용인 것 같습니다. 유괴범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조금 과하지만 유괴범이 법의 심판을 확실히 받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머지 품삯을 적시에 주는 것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기는 것은 시대가 지나도 계속 적용되어야 할 성경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자유, 질서를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은 연합을 꾀하며, 약자를 보호합니다. 또한 죄에 대해 은혜의 손길을 뻗칩니다. 교도소에 있는 분들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칠 때 그들에 대해 은혜, 자유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질서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을 당장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을 긍휼하게 봐야 하는 것입니다.

장동건3
장동건3 by Raymond.Kang 저작자 표시비영리

배우 장동건과 고소영이 사귄다는 소식이 한국 시각으로 어젯밤 자정 직전에 터졌습니다. 갑자기 터진 것에 의아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혈서 사건과 연관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영 찜찜합니다. 과거 연예인들의 사건이 많은 정치, 사회적 사건을 묻히게 한 것을 보면 왠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로 보면 장동건과 고소영은 사귀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보면 그 사귀는 것이 왠지 정치적으로 이용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일수도 있고, 진짜 정치적인 어떤 음모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사실을 볼 때 진실을 볼줄 아는 눈과 정보를 갖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사실에서 끝나지 않고 진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진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허락하심입니다. 수많은 사건이 사실을 제공합니다. 그 사건들의 진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의 틀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무시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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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노끼
    2009/11/06 02: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상황과 사실과 진실 어느것도 놓지 말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Obama Meets With His Economic Recovery Advisory Board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자유를 주시려는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입니다. 그런 분을 섬기는 사람은 은혜, 자유, 질서를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바로 그런 하나님을 공동으로 알려고 하고 그의 성품 닮기를 공동으로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21세기 교회는 그러한 모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1세기의 고린도교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교회는 21세기 오늘날 교회와 비슷한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까지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나옵니다. 12장부터 14장까지 읽을 때 우리는 보통 영적 은사와 사랑을 생각하지만 사도 바울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공동체가 되자는 것입니다.

영적인 은사와 사랑이 인간의 노력이 아닌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 자유, 질서 안에서 행해질 때 개인과 공동체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은혜, 자유, 질서의 하나님인데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성품을 완벽하게 이 땅에서 표현해낸 유일한 인간의 형상으로 오신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로 은혜요 그 자체로 죄에서의 자유요 그 자체로 질서입니다. 그가 머리가 되기 때문에 질서가 잡히게 된 것입니다.

은혜, 자유, 질서를 생각하며 고린도전서 12장의 영적 은사를 읽으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영적 은사는 개인이 잘나서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 그리고 공동체의 유익(질서)을 위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영적인 은사를 개인적으로 받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영적인 은사도 그러한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그런 개념이 이해가 잘 됩니다. 그러나 미국인은 조금 어렵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이 강하기 때문에 영적 은사가 개인적으로 받는 은사로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인이 잘 이해하는 부분은 몸의 지체 중에 약한 것을 더 중요시 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고린도전서 12장 후반부). 한국인은 그것에서는 약합니다. 나영이에게 평생 쓸 배변 주머니를 제공한 곳은 미국 업체의 한국 지사였습니다. 그렇게 이슈화 되어도 정작 나영이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데 인색한 한국 사회입니다. 약한 자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1224절 말씀을 미국 사회는 비교적 잘 이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비해서는 약간 낫다는 말입니다.

핵심은 공동체 안에서 약한 지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공동체 안에서 영적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질서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떄문입니다.

사랑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은 한 개인이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그 사랑에 감전되어 조금이나마 사랑을 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등의 내용은 사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앞에 예수님이라고 말을 붙이면 말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오래참고, 예수님의 사랑은 온유하며, 예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등으로 하면 말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전체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되시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은 곧 사랑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장에는 예언의 은사, 방언의 은사 등에 대해 나오는데 이 모든 것도 예수를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운 공동체 안에서 질서 있게 행해져야 한다고 나옵니다. 이웃과 공동체를 세우는 은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은사는 차라리 없는 게 낫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소위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에 의해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가 병고친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들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하면 자기 교회는 무시하고 그 집회로 몰려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최고의 은사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기적의 은사에 집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열되려고 했던 교회입니다(11:18). 고린도 교회는 과거 우상숭배자들로 가득했던 교회입니다(12:2). 고린도교회는 어떤 은사가 최고인지 논란이 있었던 교회입니다(12:1-3). 그야말로 혼란의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런 것 같습니다. 대혼란의 상황입니다. 뭐가 진리인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교회의 기본은 머리인 예수를 섬기는 것, 그의 대속을 믿는 것, 그의 부활을 믿는 것, 그리고 그의 은혜, 자유, 질서의 메시지를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족, 교회, 커뮤니티, , 국가, 지구촌이 모두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를 예수의 은혜, 자유, 질서의 메시지를 품고 운영하고, 공동체에 참여할 때 평화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14:33).

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보면 그는 은혜, 자유, 질서에 대한 메시지를 비교적 균형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교적 인내심이 있고, 비교적 친절한 편이며, 비교적 자랑을 하지 않는 편이며, 비교적 무례하지 않고, 비교적 불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는 시민들의 자유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엉뚱한 레이블을 붙이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질서 안에서의 자유를 선언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란 아무렇게나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어떤 틀 안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유입니다. 미국이 그동안 외쳤던 자유는 방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오바마를 하나님이 세우신 미국 대통령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1세기 고린도 교회와 같았던 미국이라는 공동체에 사도 바울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오바마가 구세주와 같다고 합니다. 틀린 말입니다. 구세주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오바마는 적어도 정치계에서는 사도 바울과 비슷하다고 하는게 더 나은 표현 같습니다. 비슷하다는 것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정치계에서는 그런 느낌을 준다는 말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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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몰리 해스켈 (나남, 2008년)
상세보기

2009 10월에 이슈가 된 나영이 사건 또는 조두순 사건을 보면서 한국에 아직도 정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영이(가명)를 그렇게 잔혹하게 성폭행을 하고 내장이 몸밖으로 나오게 할 정도로 너무나 잔인하게 어린 아이를 다룬 것에 대해 술취한 상태였던 것을 참작해 12년 형이 내려진 것은 정의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조두순이라는 사람은 이전에도 강간으로 잡혀들어간 적이 있기에 이번 형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한국의 법체계에 정의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신명기 19장은 이러한 살인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신명기 19 21. 극악한 살인자에게는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는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을 집행할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라 재판관입니다. 증거가 충분하면 재판관이 살인자에 대해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판결을 내리라는 말입니다.

이를 잘못 해석해 일반인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보면 곤란해집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하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9.11이 터진 후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읖조렸는데 잘못된 해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재판관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 사회 판결 기관(UN과 같은)에서의 판단이 필요했는데 마치 미국이 세계 불의의 재판관인 것처럼 착각하고 이라크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9.11 사태의 피해자들에게는 그 공격이 정당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다시 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해냈습니다. 해석이 잘못되었고 출발도 잘못되었습니다. 국제 사회와 판결 기관의 동의 없이 공격을 시작했기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반미감정이 솟아 올랐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무시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세계 질서에도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는 그래서 개독교는 없어져야 한다!”고 극한 주장을 펼칠 것입니다. 그러한 극한 주장, 무논리의 주장을 하는 분이 아니라면 성경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UN군이 한국으로 진입했을 때 이것은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지원군이었습니다. 그것은 국제 사회 판결 기관의 동의하에 일어났던 전쟁이었습니다. 정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신명기 1921절의 내용이 적절합니다.

한 개인의 잘못된 것을 정죄하는 재판 기관이 필요한 것처럼 국제사회에서도 그러한 기관이 있고 이 기관의 동의에 따라 잘못된 나라를 정죄하고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재판하는 기관이 정의를 무시한다면 그야말로 혼란이 일게 됩니다. 조두순 사건은 재판 기관이 법해석을 잘못했든지, 법이 잘못 제정되어 있는지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법을 바꾸든지 법해석을 다시 하는지 해야 할 것입니다.

법해석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어야겠죠. 그런데 이 사건은 객관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게 판결이 났습니다. 조두순은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는 예수님의 명언이 적용될 수 없는 극악한 사람입니다. 악한 영이 그를 인도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카에도 극악한 사람들의 집단이죠. 그런 집단에 사형선고를 내릴 곳은 미국이 아니라 UN과 같은 기관입니다. 국제 사회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2009 Five Presidents George W. Bush, President Elect Barack Obama, Former Presidents George H W Bush, Bill Clinton, Jimmy Carter Portrait by BL1961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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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6장 하반절부터 신명기 18장까지 이스라엘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을 모세가 설교하고 있습니다. 리더라함은 재판장, 공직자, , 제사장(레위인), 선지자 등이었습니다. 특별히 신명기 18장에 나오는 제사장(오늘날로 말하자면 목사)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설교 내용을 읽어보면 제사장(목사)은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을 먹을 수 있지만 땅의 유산은 상속 받을 수 없다고 나옵니다. 즉 먹고 사는 일은 보장받아야 하지만 그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유산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진행을 맡은 레위인들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생겼고 구약의 역사를 통해 보면 다른 신을 섬기는 자도 생겼으며 인간에는 관심이 없는 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두는 자가 아님은 예수님의 예화에 분명히 나옵니다.

그의 예화에는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자를 레위인이 그냥 보고 지나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이 레위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돌려서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결국 당시 천시되던 사마리아인이 그 행인을 돕게 된다는 예화입니다.

레위인은 백성의 십의 일조를 생활하는 데 쓸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면 목회자들은 그것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형 교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목회자가 교인들의 십일조로는 기초 생활도 못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면 목회자들의 연봉이 꽤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것은 헌금 액수가 높은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내상 (안태건) / 국내배우
출생 1964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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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내상 씨는 최근 모 프로그램에 출연, 목사보다 배우가 돈을 더 잘 벌 것 같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80년대 연세대 신학과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농담으로 던졌던 말은 사실 맞는 말입니다. 목사가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전체 목회자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들이 목회자들의 비리를 파헤치며 기독교를 욕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모르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들의 양무리들을 돌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분들이 안티 기독 운동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소위 잘 나가는 목회자들은 공격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운동은 오히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안티 기독 운동을 하는 분들은 기독교를 이 사회에서 몰아내 깨끗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부질 없는 사명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운동은 오히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분들을 찾아가 돕고 있는 목회자와 그의 양떼들을 힘들게 해 그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사마리아인인데 기독교를 엄청나게 욕해 놓으니까 나쁜 이미지를 벗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가 욕을 먹고 있어도 여전히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마저 도매금으로 함께 빈대로 여겨진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십일조를 받아 자신의 배만 불리는 목회자도 있지만 기초 생활도 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도 있음을 오늘날 안티 기독 세력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초 생활을 하는 것 이상으로 부를 쌓는 목회자들도 신명기 18장을 보면서 회개를 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의 유산은 오직 주님과 그의 나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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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3장을 읽으면서 잠시 힘들었습니다. 다른 신을 예배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 죽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고 폐륜아를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런 예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잘 보살펴주고 키워줬는데 자식이 얼굴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처럼 따른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진짜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어제 이사온 아저씨입니다. 그 자식이 누군지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를 아버지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를 섬긴다면 친 아버지로서는 그런 자식()을 혼쭐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예화가 생각납니다. 히틀러와 김정일과 같은 폭군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숭배하게 합니다. 또한 다른 민족을 괴롭히고 그 영향력을 미치게 합니다. 히틀러는 수많은 나라를 지배하며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하고 살인을 우습게 생각합니다. 김정일도 음지에서 군무기 수출로 세계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는 북한에서 신(god) 또는 신의 아들입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세상을 지배하려고 할 때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이 나서서 일본 지도자들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히틀러를 살해하려고 신학자 본회퍼는 암살단에 가입합니다.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까? 일제, 히틀러의 독일, 김일성, 김정일의 북한처럼 다른 신을 강제로 섬기게 하고 자신의 백성 및 타 민족을 괴롭게 하면 그들에 대한 살인은 정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내용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신명기는 여기서 단순히 타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파워나 술수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우상숭배를 유도하려는 자들에 대한 살인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준비하면서 미치광이 운전사가 승객을 태우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려고 하거나 행인을 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 운전사를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미치광이 운전사는 어떤 방식으로든 제거되었습니다. 신명기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못 적용하여 타종교인으로 타겟을 삼는다면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약 타종교에 미치광이 운전사가 있다면 제거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독기를 품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심판으로 제거할 수 없는 미치광이 파워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십계명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신명기 1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는 명령이지만 보편적인 잣대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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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ack Obama at Las Vegas Presidential Forum
Barack Obama at Las Vegas Presidential Forum by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Action Fund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신명기 10:13, 11:8, 11:19-21, 12:28을 보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계명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지킵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지금도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계명은 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의무와 마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을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는 않습니다
. 이는 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명을 주실 때의 부모의 마음을 자식이 알고 감사하게 이를 따르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는 마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반응은 크게 다릅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의 마음을 보고 기뻐하시고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사실 계명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곳저곳에서 다른 종교나 도덕법으로 지켜졌습니다. 열심히 지킨 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한 게 아니라 그 마음의 동기를 알고 섬긴 민족을 사랑하셨습니다. 물론 온인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뜻을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민족은 특별히 더 사랑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는 지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법제정을 해야 하는데 그의 의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말로 가난하고 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법제도인지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이어가기 위한 제도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전자이면 당연히 그의 개혁 시도를 지지해야 하는 것이고 후자이면 반대해야 합니다. 전자이면 사랑에서 나온 것이고 후자이면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계명을 만들었다면 이는 너무 많은 사람을 얽매이게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을 위해 계명을 만들었다면 이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니까 순종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지키려고 하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무로 하는 순종은 남는 게 인간의 영광이지만 사랑으로 하는 순종은 남는 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과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명을 주셨다는 점입니다.

계명을 만든 이가, 법을 제정한 이가 어떠한 의도로 규례를 적용하려고 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의 순종을 하는지, 의무적인 순종을 하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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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안철수 신드롬이 같은 분위기다. 언론이 너도나도 안철수 교수(카이스트) 다뤄 그의 방송을 인터넷에서 챙겨 보게 되었다. 그대로 감동 자체였다. 나는 한국에 이런 인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감탄을 했다.

그가 했던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나는 무종교입니다라고 부분이다. 그는 종교는 없는데 그의 삶은 종교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안철수 / 벤처기업인
출생 1962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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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가 비효율성의 삶이다. 그는 효율성만 강조하는 사회에서 비효율적인 선택을 적이 많았었다. 특히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할 1천만 달러를 주면서 회사를 매각하라는 미국 회사가 있었을 그는 사회를 생각하며 이를 거절했었다.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는 매각해야 당연하지만 그는 당당히 거절했다. 그의 한국 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번째가 타인을 존중하는 삶이다. 그는 CEO이면서도 부하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이유는 CEO 높은 자리에 있는 아니라 역할이 CEO이기 떄문에 직원들을 부하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 단체에도 상하 구분이 뚜렷한 요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없는 발언이었다.

번째 그는 교육의 목표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다면 교육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함을 지적했다. 그렇다. 심지어 종교인들도 자신의 자식은 교육을 받아 개인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를 기대하는 세상에서 그는 미국 경제를 망쳐놓은 사람들이 바로 유명대학 MBA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과연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깨닫게 해줬다.

그가 쏟아내는 발언은 마치 수도를 마친 수도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내공이 가득하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그런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종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신의 존재를 믿는 자로서 나는 그가 신의 마음을 가진 자라고 본다. 다만 종교라는 껍데기가 그에게는 없을 뿐이다. 그의 정신의 흐름, 사고의 체계는 하나님에 의해 다져졌다고 생각이 든다. 시대에 믿을만한 종교인이 드무니 하나님이 내민 히든 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독교
성서에도 신을 믿지 않은 존재들이 자주 쓰임을 받았음을 있다. 교수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죽을 후회 없음을 위해 이런 삶을 산다고 했다. 과연 죽는 순간을 위해 그는 이렇게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신의 쓰임을 받고 있는 것일까. 계속 질문을 던지며 답에 근접한 내용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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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쎄..
    2009/06/25 03:0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종교가 없는 이유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안교수의 경우는 그냥 시간이 없어서일것같은데.. 종교라는게 그게 무슨 스포츠나 취미활동처럼 시간 엄청 잡아먹거든.. 그 흔해빠진 골프도 안배웠다는 사람인데 뭘..
    • 2009/06/26 00: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어떤 인터뷰에서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종교가 없다고...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생각이 깊은 사람이니까...한 번 보죠...어떻게 인생을 마무리 지으실지 궁금하네요. 댓글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공평해 보이는 하나가 있다. 아무리 달리 살아도 공평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탤런트 여운계씨 사망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연기자다) 죽음에 대해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살았을지라도 우리는 죽는다. 화려하게 살았든 음지에서 살았든 부자로 살았든 가난하게 살았든 사랑받고 살았든 미움 받고 살았든 우리는 죽는다. 수백 억원으로 바꿀 없는 죽음인 것이다. 진시황제도 죽기 위해 별의별 음식을 먹었지만 역시 죽음만은 피해갈 없었다.

여운계 / 탤런트
출생 1940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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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 ♥여운계사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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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공평하다. 그러나 죽음 후의 삶은 그렇지 않다. 여운계씨는 죽은 후에 존재 자체가 사라졌을까. 아니면 사후의 세계에서 살게 될까. 어떤 종교관을 가졌느냐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사후의 세계를 믿는다.

사후의 세계가 없다고 믿으면 사후의 세계가 있을 경우 너무 당황스럽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으면 사후의 세계가 없을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사후의 세계가 없으니까 문제도 없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논리이면서도 인생에서 쯤은 생각해 문제다.

그래서
이성과 논리는 종교와 연관이 없는 같으면서도 연관이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 논리적인 것이다. 여운계 씨의 명복을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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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2 19: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신차리고 헛소리들좀 그만합시다. 사후세계는 천국과 지옥밖에 없습니다
  2. 2009/05/22 21:1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교회 안에서는 그렇죠. 맞습니다. 기독교 안에서 사후 세계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마가복음 2장
 

상식을 초월


상식
(common sense) 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의미는 다음과 같다. ‘사회에서 어떤 시기에 보통 사람들이 특별히 숙고하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의견이나 판단.’

예수님이 사역하셨던 당시의 상식은 인간의 몸으로 있는 자는 죄를 용서할 수 없고
(7), 성직자는 죄인들과 사귀는 게 옳지 않고(16),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24)이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식을 무너뜨린 분이 아니라 뛰어넘는 분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과 상식을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그 결과물에 있다. 상식을 뛰어넘은 예수님은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을 이롭게 했다. 그는 결코 상식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는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지 율법을 없애신 분이 아니다.

상식을 넘어선 예수님은 결국 병자를 고쳐주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셨다. 상식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을 이롭게 한다.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실족케 한다. 중요한 차이점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상식을 무시하면서 마치 상식을 초월한 사람인 양 행동하지만 그 결과물은 너무나 다르다.

 

스캔들?


예수님이 소위 말하는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눴던 사건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스캔들감이었다. 마약 복용으로 체포된 연기자 주지훈과 같은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과 예수님은 함께 음식을 먹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의 행동은 '죄'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당시 예수님을 공격했던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공격했다. '죄'를 방치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지훈 / 탤런트,국내배우,뮤지컬배우
출생 1982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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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카페 (공식) 세계를 정복할 배우 주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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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목적은 그러나 죄인들을 이롭게 하게 함이었기에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누군가가 이 죄인들을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분명 스캔들일 것이다. 자기 유익을 추구했더라면 스캔들이다. 오늘날 많은 스캔들은 결국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타적인 스캔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성적인, 물질적인, 지위적인 이득을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스캔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면에서 달랐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스캔들로 몰고 가려고 했지만 그의 이타적인 행위는 그를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결국 예수님의 행동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잘 아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분은 타종교인들과 교류를 부지런히 한다. 기독교계 내에서는 이를 마치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릴 때처럼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그 목사님이 타종교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분명 스캔들이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다. 예수님이 그랬기에 우리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우리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것이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를 봐야 한다. 이타적이라면, 자기의 유익을 취하지 않으려는 동기였다면 사랑의 마음이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적용


어떤 일을 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 때로는 욕을 먹게 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할 때 이것이 이타적인 것이라고 판단이 든다면, 사랑의 마음이라면 그대로 할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오해하겠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예수님은 아신다. 성령께서는 위로 하신다. 나는 그런 억울한 경험이 있지만 내가 침묵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하기에 나는 침묵하기로 했다. 위로하심을 경험했다.

 

Think Deeper


자유롭다는 것은 내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말할 수 있는 자유
, 내 행동이 비난을 받고 비웃음을 사고 쓸데 없는 일로 여겨지더라도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음을 나타내는 모든 징표들로 인하여 감사드릴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나는 내가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온전히 믿을 때, 진정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헨리 나우웬,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에서>

 

헨리 나우웬 (Henri Jozef Machiel Nouwen) /
출생 1932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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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지훈은 재기해야 한다.

    2009/04/28 17:31
    삭제
    마약 복용 혐의로 조사 받는다는 연예인 이름 중에서 주지훈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과 당혹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부실 수사를 덮기 위한 연막 작전이라는 수사 발표의 뒷 배경에 대한 말들이 쏟아지고, 이렇게 사건 자체만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신뢰가 사라진 현실이 짜증나기는 하지만, 그 배경이 어찌되었던 촉망받던 유능한 젊은 배우의 추락은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게다가 이제 겨우 잘생기기만 한 모델 출신 연기자의 꼬리표를 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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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님안에
    2009/04/28 02:0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상식을 넘어서 주시는 주의 은혜를 오늘도 감격합니다.
  2. JoeY
    2009/04/28 15:4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사람을 품을줄 아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것과 상식을 무시하는 것의 차이는 바로 그 결과물에 있다.'는 밝은터님의 생각이 마음에 듭니다.

성경: 로마서 71-6

의미 심장한 로마서 7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 7장은 의미심장한 장입니다.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엉뚱한 메시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마서 7장에는 율법(the Law)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율법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설명됩니다.

율법을 생명체처럼 느끼게 설명

사도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경건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생명체 노릇을 하는 것은 돋보이려면 우리의 죄가 환히 드러나야 합니다. 죄가 안 드러나면 율법은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인생에서 장점이 곧 단점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온전하지 않는 이유는 제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인간이 죽기 전까지만 필요하고
(로마서 71) 문자(로마서 76)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살아나면 나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어야, 나의 죄가 드러나야 율법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필요하면서도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렇게 역설적입니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나에게 독이 될 수 있고, 나에게 독이 되는 사람이 나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을 편하게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인간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사회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완벽한 게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

우주에서 완벽한 존재는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온전한 존재를 섬기는 방법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입니다 (로마서 76). 율법에 자유해져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 때 인간의 삶은 점점 온전해집니다. 점점이라는 말은 한 번에 온전해질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죽는 날까지 차츰 온전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를 져야 돋보이지만 성령은 우리가 온전해질수록 빛이 나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는 거룩하지만 인간과 연관을 짓게 되면 죄를 드러나게 합니다. 성령은 그 자체로도 거룩하고 인간과 연관지어지면 죄를 녹입니다. 그 차이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기 전에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율법이 살아나려면 인간의 죄가 드러나고 죽어야 했기에 인간은 율법과 처절한 씨름을 해야했습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고 죽지 않기 위해 율법과 씨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굴레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그렇지 않다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는 전문가

성령이 함께 하면 인간은 거룩에 가까워집니다. 율법이 필요 없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죄성이 살아납니다. 이때 율법이 들어와서 우리를 얽매게 됩니다. 율법은 불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는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성령을 오가며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합니다. 법은 우리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못 박아두었습니다. 그 법이 드러나려면 우리가 속도 위반을 해야 합니다. 그 법이 필요없지는 않지만, 질서를 위해 필요하지만 법의 역할은 우리의 죄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속도 계기판은 성령과 같은 존재

자동차 안에 속도 계기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운전하는 속도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계기판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나 운전 법률은 우리에게 속도 위반의 죄를 인식하게 해줍니다. 성령은 속도 계기판처럼 우리의 상황을 알려주지만 우리를 죄의식으로 몰아넣지는 않습니다. 그 존재의 역할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율법은 운전 법률 같아서 우리에게 죄를 알게 해줍니다.

율법은 엄격한 선생이라면 성령은 따뜻한 엄마같습니다. 우리는 제한된 존재이기에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에서 엄격한 선생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따뜻한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엄격한 선생과 같은 우리 사회

우리 사회는 엄격한 선생과 같습니다. 잘못이 드러나면 모두 손가락을 들고 삿대질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잘못을 안 한 척하고 삽니다. 교회를 가면 모두 거룩하게 보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엄격한 선생에게서 훈련 받은 결과입니다. 간혹 따뜻한 엄마의 사랑이 충만한 사람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엄격한 선생의 훈련을 받고 멀쩡하게 앉아 있습니다. 잘못을 드러내면 지탄을 받기에 문제가 없는 척이라도 해야 합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왜 자살을 선택합니까? 얼마 전에는 영국의 한 배우가 자살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따뜻한 엄마를 경험하지 못해서입니다. 제가 좋아했던 배우 최진실 씨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이 사회에 너무 엄격한 선생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엄격한 선생일 뿐인데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율법인 것처럼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율법 하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입니다.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 합니까? 이런 말을 하면 정의로운 분들은 싫어합니다.


최진실 / 탤런트
출생 1968년 12월 24일
신체
팬카페 만인의 연인 최진실과 함께
상세보기

오직 예수

그런데 정의는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에게만 있습니다. 성령은 따뜻한 엄마와 같아서 죄 많은 자식도 다 품에 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사실 이 사회는 율법이 필요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두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안 그렇습니다. 내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받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줄 엄마와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손가락질을 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는 유일한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적용

사람을 볼 때 성령의 마음으로 본다. 나를 볼 때는 율법의 잣대로 때론 필요하다. 나는 유한한 존재이니까. 사람을 볼 때 율법을 들고 보면 어울려서 지낼 사람이 있겠는가. 성령의 마음으로 봐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끔 율법의 잣대도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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