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dular Monkey
Ipodular Monkey by emilybe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어폰을 MP3에 연결해 음악을 크게 듣고 있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청년은 내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귀에 이어폰이 꼽혀져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귀와 눈을 막고 살고 있습니다.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꼭 들어야 할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수많은 쇼와 드라마와 코미디와 광고에 귀를 기울입니다. 거의 이어폰을 꽂아서 듣는 수준일 정도로 몰두합니다. 

많은 사람이 신(神)이 없다고 말합니다. ‘옛날에 그렇게 활발했던 신이 지금은 왜 그리도 침묵하고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의 기적을 일으켰던 그 신은 지금은 없단 말입니까? 애초에 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귀와 눈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눈이 다른 곳에 집중해 있으면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을 못 볼 때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 집중하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것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환경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르짖었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 그래서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평소에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상식인 것처럼 신도 그러한 상식에 기반을 두시고 계십니다. 물론 아주 극한 상황에서는 다른 반응을 보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신을 찾는 방법은 그 신에 대해 말을 하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 정말로 자세히 알고 싶으면 책을 읽는 것처럼 신의 역사에 대해 상세히 적은 성경을 읽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입니다.

신에 대해(knowing about God) 알고 나면 신을 아는 지식이 생깁니다.(knowing God). 즉 신과 교감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어폰을 빼고 다른 곳에 집중해 있던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을 진정으로 알게 될 때 성경에서 나오는 기적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세상이 신을 알지 못하게 여러 방패막이를 쳐놓고 있기 때문에 그 장벽을 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하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인터넷에 무료로 제공) 성서를 다른 곳에 쏠린 마음을 비운 후에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제 이어폰을 뗄 때가 됐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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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낙트웨이 사진 기자는 전 세계 전쟁과 가난을 쫓아다니며 보도 사진을 찍는 종군기자입니다. 최근 그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회가 점점 엔터테인먼트와 유행에만 민감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와 유행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이 두 분야가 사람들의 다른 관심사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와 사람들의 만남의 자리는 온통 엔터테인먼트로 가득합니다. 놀이와 유행이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이 놀이를 즐길 수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마저 송두리째 빼앗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방송 중 그가 했던 말을 소개합니다.


언론매체들로 하여금 좀 더 결정적이고 중요한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그건...수월했던 적도 없지만, 지난 몇 년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가면 갈수록 오락과 유행에 사로잡혀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고주들은 자기들의 상품 이미지가 (어려운 이웃들의) 비극적인 사진 옆에 전시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네 상품의 판매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죠.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모이는 모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속한 단체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방문하는 인터넷 신문은 어떻습니까. 방송은 어떻습니까. 온통 엔터테인먼트로만 가득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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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REE MILK STATION IN BEIJING -- Another American Missionary Project in OLD CHINA
A FREE MILK STATION IN BEIJING -- Another American Missionary Project in OLD CHINA by Okinawa Soba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미국 사회는 나를 기쁘게 하는 문화가 발달된 사회입니다. 내가 기쁘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래서 TV, 영화, 스포츠, 마약 등이 굉장히 발달돼 있습니다. 영화, 스포츠, 마약 등은 내가 기쁜 중요한 문화입니다. 내가 기쁜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기뻐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들 문화는 대체로 내가 기쁜 것에서 그칩니다. 중단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요소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러한 문화에 빠지게 되면 자칫 우상숭배하듯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쁘면 그만이 됩니다. 내가 좋으면 된다는 사상은 우상인데 그 우상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내가 기쁘면 되는 문화에서는 남은 안중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은 오직 나의 이익만 생각하고 남의 어려움과 남의 기쁨은 생각을 잘 안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쓰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성과 향락에 빠졌던 사람들입니다. ‘나만 기쁨문화가-= 아직도 그들에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경향이 조금씩 빠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옛날 습관이 있어서 남을 존중하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남의 기쁨과 남의 고통은 그다지 챙기지 않는 아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온갖 논란의 온상지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먼저 바울의 사도됨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분파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볼로의 편인가, 나는 바울의 편인가, 나는 베드로의 편인가하는 논란이 교회 내에서 일었습니다. 다 쓸데 없는 논란입니다. 크리스천은 모두 예수의 편입니다. 인간의 편으로 갈라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고린도 전서 9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또한 여전히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린도 전서 10장에는 그러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한쪽으로 가야 한다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양다리라 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탄에 한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믿는 것에 한발을 걸쳐 놓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조상이 그러한 모습을 보였기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뻐해야 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10 23절부터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교훈합니다. 내가 기쁜 것도 소중하고 귀한 일이지만 이제는 크리스천으로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을 권고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면 나는 손해볼 때가 있는 것이죠. 내가 챙길 이익을 다 챙기고 어떻게 남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나만 기뻐하는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 교인이 되어 성숙해지기 전에 발생하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미국 사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남을 생각하는 크리스천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크리스천이 처음 되자마자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으면 위험한데 바로 고린도 교회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Conversion of St Paul
Conversion of St Paul by Lawrence OP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사도 바울이 비교적 빨리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유대교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바 있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사도들의 훈련을 끊임 없이 받았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소위 말하는 좀 놀았던사람들은 시간이 걸립니다. 금세 사람이 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좀 놀았던사람들의 집합체가 고린도 교회이기에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급기야 바울 사도가 긴 편지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버텨나가는 이유는 알게 모르게 남을 위해 사는 크리스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를 위해 세계를 위해 자신의 기쁨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중국 깡촌에 가보면 대부분 미국인 선교사들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남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있기에 미국이 미국 교회가 버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수고를 간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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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bow silhouette
Rainbow silhouette by Swamibu 저작자 표시비영리

사람의 의견은 때로는 중요합니다. 사람의 인식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명령대로만 살면 참으로 간단하고 편할텐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삶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파트너십을 이루며 살면서도 동시에 우리 인간 사이에서도 파트너십이 유지됩니다. 물론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그의 명령을 이행하고 그를 기쁘게 하는 파트너십이겠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과 8장에서 사람의 의견으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7장에서는 결혼에 대해, 8장에서는 제사 때 쓰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7장에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사견임을 전제로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725절에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712절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8장에도 보면 사람들의 의견 또는 인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바울 사도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 때 사용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을 자주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질서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는 사도 바울의 사견이 참으로 중요한 상황입니다. 고린도 전서에 있는 많은 내용이 사도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들고 상황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화란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사견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혜로운 자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고린도 교회에 알맞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모든 일에 다 명령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을 다 기록할수도 없습니다. 다만 인간 파트너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상황에 맞는 의견을 주는 방식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정에 가장이 있고, 교회에 담임 목사가 있고, 회사에 사장이 있고, 학교에 학장이 있고, 국가에 수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리더들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울이는 리더이냐 아니냐는 그가 인도하는 그룹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귀 기울일 때는 좋은 리더인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백성을 망하게 하는 리더가 됩니다. 다른 리더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십은 인간의 사견의 중요성 그리고 그 사견이 무엇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너무 중요하지만 인간의 모든 부분을 세밀하게 문자로 터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인간의 마음을 터치하셔서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시죠. 하나님이 성경에 TV, 라디오, 인터넷을 거론하지 않으셨지만 그의 자녀들에게 이런 분야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지혜를 주셨습니다. 기독교 리더들이 문자적인 하나님 말씀만 붙잡다보니 결국에는 이렇게 새롭게 이슈로 급부상하는 것들에 대해 무시하게 또한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새로운 이슈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견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하는 사견입니다. 우상숭배 때 사용했던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도 새로운 이슈입니다.

그렇기에 리더는 중요한 것입니다. 리더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오늘날의 컨텍스트(상황)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며 새로운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때 따르는 무리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유를 경험합니다.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리더가 게으르면 너무나 간단하게 말을 합니다. “그건, 성경에 없으니까 하지마!” 그런 지도자와 함께 있는 추종자들은 끊임없이 나오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 눈과 귀를 가려야 합니다. 아니면 몰래 그런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죄의식이 발생하죠. 그것이 사탄의 고단수 수법입니다. 산으로 들어가면 리더가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람들과 섞여 산다면 그것이 얼마나 듣는 이를 힘들게 하는지 그 리더도 잘알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 문에 새롭게 부상하는 새 분야에서 기독교인들은 기여는커녕 방해자로만 여겨집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기 때문에 일단 반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다 비성경적이라는 태도는 기독교인을 점점 세상에서 영향력이 없는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자동차, 전화, 셀폰, 컴퓨터, 노트북, 비디오 프로젝터, 음향 시설, 전기, 각종 악기, 인터넷, TV, 영화 등이 기독교인들에게도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거론한 분야들은 대부분 초기에는 비성경적인 분야였습니다.

새로운 분야가 나오면 하나님 마음을 품은 자들이 이것을 성경에 비추어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 문명의 도구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합당한 설교를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7장과 8장에서 그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견임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경 속에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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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 Awaits You!

Hell Awaits You! by danny.hammontre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하나님은 여기 적혀 있는 자들에게도 천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죽는 날까지 주십니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창노릇을 하는 자나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남을 중상하는 자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

이 내용이 나온 후에
11절에는 다음 내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위와 같은 행동을 했던 분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에 69절과 10절에서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를 통해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전체를 살펴보면 지금 고린도 교회는 69절과 10절에서 묘사하는 이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혼란에서 질서를 잡아주려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절만 보면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그런 사람들이 지금 고린도 교회의 교인으로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도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왜 사도 바울은 이들과 식사도 함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전에 이렇게 지냈던 새로운 신자들이 영향을 받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영향'이라함은 도덕적인 영향보다는 다른 신을 섬기도록 하게 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69-10절에 나오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종교의식으로 그러한 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종교 의식 중에 그러한 행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고린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갈 어떤 접촉점이 있다면 좋지 않은 것이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69-10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용서못할 죄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용서를 받을 수는 있지만 다른 신을 섬기도록 하는 성향이 있기에 교회의 질서를 위해 멀리하기를 사도 바울은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과 사귀기를 거부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들과 대화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였기에 그들과의 사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럴만한 믿음이 굳세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 계속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나 어떤 믿음의 모임이 성숙해져있다면 69절과 10절에 나오는 분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하지만 성숙도가 낮다면 철저히 배제하도록 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612절에서 모든 게 가하지만 모든 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바로 자유와 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들에게 여전히 구원의 기회가 있습니다. 모든 게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유라면 유익하지 않고 구원의 기회가 점점 좁혀지게 됩니다.

당시 창녀 또는 남창들은 성행위로 다른 신을 섬기는 의식을 했다고 합니다. 성행위는 종교적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미국(또는 한국) 사회를 봅니다.

음란한 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창노릇을 하는 자나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남을 중상하는 자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

이 말씀과 미국을 보면서 보통 드는 생각은 미국이 이런 자들에게 너무 관대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너무 미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고전 69-10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체로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다른 신이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율법의 신을 섬깁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아닌 율법을 섬깁니다. 우리는 유명한 목회자를 섬깁니다. “OOO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야라고 말하며 그의 말이 하나님 말씀처럼 탈바꿈합니다. 대형 교회를 섬깁니다. “OOO 교회에서 그걸 했으니 우리도 하자!” 대형 교회가 하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또한 성취의 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이 성취하게 하셨다고 자랑을 늘어놓지만 정작 하나님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그런 것이 69-10절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다른 신을 섬기게 하는 어떤 요소가 지금 교회 안에,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머니, 섹스, 파워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보다 머니가 더 좋고, 하나님 나라보다 섹스가 더 좋고, 하나님 나라보다 파워가 더 좋으면 그게 우상 숭배입니다. 이런 것을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자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가 파괴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해결해야 할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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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tar
Ishtar by seriykotik1970 저작자 표시비영리


고린도전서의 배경은 미국과 비슷한 같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중시하는 고린도라는 도시의 사원(temple) 1,000명의 창녀를 고용해 비너스 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미국도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메카라고 있죠. 그래서 자유하면서도 방종하는 경향이 짙은 나라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항하는 보수세력도 강하게 있습니다.

섹스와 마약이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에 고린도전서는 적용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는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와는 자리에서 식사도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 아버지처럼 하는 간곡한 부탁이면서 명령이기도 합니다.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는데 그러면 교회에 누가 다니는 것일까요? 얼마 저는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5학년)에게 학교에서 누군가가 캔디를 주면 받아 먹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캔디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고 초등학교에도 마약을 파는 아이들이 침투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당연히 자식을 보호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마약을 파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어울려지내면 되겠죠. 그래서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렇다면 마약을 파는 아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아는 중에는 과거에 마약을 팔았던 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녀가 됐죠. 자식에게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과 놀지 것을 말하면서도 편으로는 그들도 하나님에게서 사랑 받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분도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질서를 위해 사도 바울은 그들과 어울리지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선교사를 보내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약 중독인 자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는 전도자를 보내실 것이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자에게는 그런 경험이 있는 전도자가 도울 것입니다.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니기에 소위 말하는 죄인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창녀를 측은하게 여기셨고 세리와 어울려 지냈습니다. 예수님이기에 그렇게 하실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혹받기에 쉬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있을만큼 믿음이 강한 자들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글을 받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믿음이 약함은 이미 고린도전서 1, 2, 3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들은 약간은 어설픈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초로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지혜로 교회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별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분별력으로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분열될 수밖에 없고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훈계를 하듯이 강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 탐욕스러운 , 도적질하는 , 우상숭배자, 술주정뱅이를 비롯해 동성애자, 마약거래상, 다단계 판매를 목적으로 교회에 침투한 , 이단인데 교회에 혼란을 주기 위해 침투한 등은 모두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숙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전도자, 선교사, 목사라면 이들을 품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명확한 경계선은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이들을 품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로 불렸던 자들 중에도 이런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징계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기회도 있어야 합니다. 기회는 인간이 주는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뜻을 인간은 간파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받고 어려움에 빠진 자들을 돌보는지 모릅니다. 마약중독자를 돕는 선교단체의 목사님은 마약거래상이었다가 나중에 그들을 돕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몸을 파는 직업을 가졌다가 나중에 목회자가 자식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탐욕스러웠는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의 길을 가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앞잡이였는데 지금은 주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분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걸렸다가 지금은 금주 센터를 차리고 음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봉사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성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교회를 욕하겠습니까. 교회도 연약한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고 질서도 필요한 몸체입니다. 특수 사역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특수 사역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관점으로 고린도 전서 1장부터 5장까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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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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