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종교

2010/02/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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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2002 World Series, Angels vs. Giant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보면 사실 우리는 핵심적인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바로 '네 몸(yourself)'이다.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내 이웃에 대한 사랑이 달라진다.

아주 유명한 스포츠 라디오 진행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학대한 사람(위 사진)이다. 나는 그를 LA 다저스 구장과 에인절스 구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고 정말로 놀랐다. 몸무게가 400파운드가 넘는 것 같았고 걷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이었다.

아주 놀라운 사실은 자신의 몸을 학대한 그 사람은 라디오에서 공개적으로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 사용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현실의 기쁨과 성취를 위해 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논조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의 그런 발언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의 실천이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이웃도 나처럼 살기를 기대하며 '사랑'을 실천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기준과 관점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글렌 스태슨은 "사랑은 상호적이지 결코 한쪽으로만 쏠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결국 내 이웃과 내 몸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상호적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몇 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약물 이슈를 보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생각난 적이 있다. 릭 앤킬이라는 야구 선수가 수년 전 약물을 복용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신데렐라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는 미 언론의 조롱이 시작됐다. 앤킬은 심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야구계를 떠나 있다가 돌아온 선수였다.

나의 삶을 어떻게 다뤘느냐에 따라 앤킬의 이슈에 대한 반응은 달라진다.

#1 인생에서 돈 버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약물을 잘 활용하면 몇 백만 달러, 몇 천만 달러를 벌 수 있는데..."
#2 약물 복용으로 고통을 받았던 사람: "그거 절대하면 안 돼. 몸 망치고 인생 망친다. 선수들이 너무 걱정돼..."
#3 현재 마약이나 약물을 복용하는 자: "그게 뭐 어때서, 쿨 하잖아. 잘하고 있어!"
#4 예수님: "네 죄가 없거들랑 돌을 던져라. 그는 100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다." 

 
이들은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살았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내 몸을 내 생각을 내 삶을 어디에 맡기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사랑의 표현 방식은 너무나도 다르다. 
 
우리가 '사랑'을 논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사랑이 이상적인 도덕의 완성이라고 착각을 하는 점이다. 사랑은 어려움에 빠진 자를 난관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이웃의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게 어려움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졌던 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다. 사랑을 보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결'(confrontation)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게 바로 사랑의 묘미다. 대결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쉬운 방법(그 자체로 이해하는 척 또는 무관심)을 선택한다. '대결 상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대결'을 하는 사람을 사랑이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잘못된 사랑의 관점 때문에 오늘날 '사랑(?)'은 연약한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메이저리그 약물 이슈를 보면서 나는 나(myself)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약물 이용 선수를 바라보며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5차원 전면 교육(원동연 박사)'이라는 것을 스스로 도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진작 약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개발해 내놓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완벽한 시스템'은 있을 수 없지만 '돕는 시스템'은 만들 수 있다. 나의 사랑 방식만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의 핵심은 '나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이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과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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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Fans 2006 WBC
Korean Fans 2006 WBC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화제의 이벤트가 됐다. WBC는 야구 월드컵이다. WBC는 축구 월드컵보다 전 세계적인 관심도와 집중력이 덜한 편이지만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나의 지인은 이 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한국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미국에 왔을 정도다.

WBC는 왜 한국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가 생각해 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야구가 인기 스포츠이기 때문에, 몇 달 동안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일본과 맞대결이 자주 있기 때문에 등등 여러 이유가 있다.

나는 WBC와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을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스토리텔링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이야기하기’이다. 이야기를 하는 자를 스토리텔러(Storyteller)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과 WBC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WBC에는 단순히 승패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승패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있다. ‘봉중근 의사와 이치로 히로부미’와 같은 말이 생산되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 야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WBC를 둘러싼 이야기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꺼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회 중에 방문했던 교회에서는 설교자가 설교 중에 WBC 이야기를 하며 ‘한국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했는데 청중들은 이 말에 잠시 웃을 기회가 있었다. 이처럼 WBC에는 공통으로 관심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사람들이 더욱 집중을 하는 것이다.

축구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공통된 관심사가 우리를 기쁘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도 2세인 자녀와 WBC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아들은 WBC에 대해 궁금한 게 많고 아빠는 이에 대해 답변해주기 바쁘다. 이야기가 있는 곳에 관심이 집중되고 대화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WBC에 스토리 텔링이 있기에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의 관심은 집중된다.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교회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레너드 스윗 (좋은씨앗,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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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윗은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철저하게 종교적인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경험을 조직화한다”고 덧붙였다. 

WBC와 스윗이 한 말을 연관짓는다면 세계 야구 대회에서의 경험이 이야기로 펼쳐질 때 이는 종교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야구가 좋은 게 아니라 어떤 종교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두한다고 볼 수 있다. ‘봉중근 의사와 이치로 이로부미’라는 말은 바로 어떤 경험이 이야기로 풀어내어진 것이고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듣고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배경화면용 소녀시대 포스터?!
배경화면용 소녀시대 포스터?! by 정호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2009년 초반 한국에서 불었던 또 다른 대중문화적 현상은 바로 소녀시대와 최양락 신드롬이었다. 소녀시대는 9명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여성들로 구성된 음악그룹으로 그들이 부른 ‘Gee’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왜 소녀시대와 Gee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까. WBC처럼 여러 이유가 있다.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귀엽고, 노래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등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아내는 “TV에 자주 나오니까 그렇지”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다 맞는 말이다.

이를 스토리 텔링의 관점으로 본다면 흥미롭다. 9명의 ‘소녀’들은 각자가 다양한 경험이 있다. 그들이 토크쇼나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말들은 지겹지가 않고 신선하다. 9명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욱 신선하게 들린다.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기에 이들은 더욱 자주 TV출연을 하게 되는 것이다. 표현이 거칠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솔직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써먹으면 금세 겹지만 소녀시대는 새로운 이야기를 연일 쏟아내기에 TV만 켜도 소녀시대가 나온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거의 신드롬을 일으키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최양락 / 개그맨
출생 1962년 5월 20일
신체 키183cm, 체중80kg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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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이라는 80-90년대에 인기 있었던 개그맨이 최근 ‘황제의 귀환’이라는 타이틀로 복귀하면서 놀라운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그의 ‘스토리 텔링’이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이들은 그가 쏟아낸 옛 이야기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성경도 사실 이야기로 구성됐다. 도덕경전이 아니라 피조물의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서 했던 것들은 주로 스토리텔링이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그의 뜻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인간의 근본을 다루는 스토리텔링이었기에 그의 복음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는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다.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그 스토리를 어떤 관점으로 어떤 정착지로 이끌고 갈 것인가는 스토리텔러와 청중의 마음과 뜻에 달려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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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김홍식 특파원 diong@joynews24.com   
 
메이저리그 스타덤을 눈 앞에 둔 최고의 유망주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은퇴한 이유가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점은 더욱 놀랍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리그 최고의 유망주로 꼽히는 그랜트 데스미는 23일 빌리 빈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쉬웠지만 오클랜드도 이미 그의 신앙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기를 생각하면 일반인으로선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은퇴 결정이었다. 이제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당장 올시즌 후반 꿈의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를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3세의 데스미는 2003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오클랜드에 입단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부상 때문에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싱글A 131경기에서 홈런 31개, 타점 89개, 타율 2할8푼8리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도루도 40개였다.

기사 계속 읽으시려면 아래 주소 클릭하세요.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10&g_serial=47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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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Little League Baseball Kid
American Little League Baseball Kid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가수 이문세 씨가 부른 '그녀의 웃음소리뿐(1987)'이라는 노래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많은 젊은이에 의해 불렸다.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어느 지나간 날엔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그날은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녀의 웃음소리뿐." 다른 것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의 웃음소리가 기억에 남는다는 내용이다.

나는 잠이 부족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어 심리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여러 방법으로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역시 명약은 '아이들의 웃음'이었다. 아이들과 킥볼(발야구), 야구, 알까기 등을 했는데 아이들은 역시 신이 났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와 모습을 듣고 보면서 나의 처진 마음은 많이 회복됐다.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아닌 '아이의 웃음소리뿐'이라는 노래를 한 곡 써야 할 판이었다.

그러면서 생각난 것은 우린 스포츠를 하면서 너무 많이 심각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최경주 선수는 한 대회에 참가해서 성적이 좋지 않자 "허허" 웃으며 하루를 마감했다고 한다. 최경주는 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선수인 것 같다. 웃으면 대충하는 것처럼 보여서 프로 선수들은 일부러라도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스포츠 경기 취재를 했을 때 놀란 점은 패한 팀의 라커룸에 들어가면 거의 초상집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점이다. 져서 기분 좋을 선수는 없지만 그렇게까지 '연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이만수 코치( SK 수석코치) "패한 후에 웃는 선수는 동료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고 기자에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이는 아마도 "너희는 수백만 달러, 수천만 달러를 받는 선수이니 심각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듣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항상 "깔깔" 대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그러나 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도 이러한 '승부의 세계'의 맛을 봤기 때문일까. 동네 스포츠를 해도 무조건 이겨야 기쁘고 지면 슬프다. 어떤 아이들은 가볍게 한 스포츠에서도 지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사회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쟤는 승부욕이 강해. 멋지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멋져 보일 일이 아니다.

스포츠는 즐김과 보람이 핵심어다. 스포츠를 통해 즐김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보람이 따르면 금상첨화다. 스포츠는 그런데 '승리'가 최고가 됐다. 이기면 모든 게 용서된다. 사실 경기를 즐기는 선수가 가장 무서운 선수인데 즐기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축구스타 초롱이이영표 선수는 언젠가 "축구는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즐기는 사람은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즐김 자체가 승리이다. 공익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즐겁게 하는 이는 인생에서 승리한 자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자가 웃는 웃음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최근 S와 농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재미있게 농구를 했다. 재미난 말과 행동으로 함께 농구 했던 이들을 즐겁게 했다.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그는 승리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저녁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다. 아이들의 소리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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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jing-Olympic-2008 - Discipline: ethnic minorities shooting
Beijing-Olympic-2008 - Discipline: ethnic minorities shooting by H.KoPP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안티 기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종교 협의회 같은 단체도 있다. 나는 이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은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며 "이 땅에서 개독교는 박멸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전문성(?)도 있다. 신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 중 일부를 추려 성경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설픈 기독교인이 들어와서 전도하려고 했다가는 육두문자의 욕을 먹고 퇴장해야 한다. 상호 간에 욕설이 난무하면 안티 기독 활동가들이 승리한다. 그들은 "이것 봐. 믿음이 있어도 이렇게 인내가 없잖아"라고 말하면서 '승리의 축배'를 든다.

이들이 성경 다음으로 '씹기' 좋아하는 아이템은 바로 대형교회와 그 교회의 목사들이다. 엄청난 재물과 권력으로 교세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사회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대형교회 비난론'의 핵심이다. 일부 내용은 동의할 만하다. 도대체 왜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이는 종교가 권력이 됐기 때문이다. 한 신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종교를 앞세워 정치권력을 얻는 것은 위험하다. 종교는 사회에서 작은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정치가들이 종교 탄압을 못 할 정도로만 힘을 가지면 된다." 맞는 말 같았다. 조지 부시 부자,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기독교 신앙을 앞에서 대통령이 됐지만 사회가 더 발전한 것 같지 않았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그렇게 더 나아질 것도 없다. 침례교 목사였던 마이크 허커비가 '바이블 벨트'에 의지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권력은 결코 자신의 '신앙'을 정결케 하지 못한다. 정결하지 않은 신앙으로 정치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과거 십자가 운동을 보라. 신앙의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했던가. 성경 속의 인물 다윗과 솔로몬도 엄청난 권력을 얻은 후에는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았던가.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권력도 종교 권력 못지않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단체다. IOC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과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의 중계권료로 미국 NBC 방송으로부터만 22 100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이렇게 큰돈이 오고 가면서 올림픽의 순수한 정신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올림픽은 '돈림픽'이 됐다. 돌아버린(crazy) (money)의 축전이 된 것이다. 스포츠는 또한 도박 때문에 순수성을 많이 잃었다. 도박은 갱 집단에 의해 운영되는 게 다반사이고 이들은 돈을 벌고자 온갖 권모술수로 스포츠의 순수함에 악영향을 미친다. 심판 매수, 선수 매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적발된 건수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실질적으로 돈을 받고 져주기 게임을 한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약물 복용이 쉬쉬하며 오래갔던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와 스포츠의 근본정신은 순수하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고 스포츠는 초월적 경험(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표현)을 통해 행복함을 누리고자 개발됐다. 순수성이 권력에 의해 훼손된 후 두 분야는 제 기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기독교와 스포츠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그것은 억지 주장이다. 2008MBC-TV '뉴스후'에서 한국 대형 교회 목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옛날 같았으면 기자는 "목사가 저럴 수 있나?"라며 계속 쯧쯧 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갖게 된 시스템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들은 타락한 다윗이나 솔로몬왕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들을 이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것보다는 그들의 능력을 건전한 방향으로 돌려줄 만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것 같다. 스포츠도 이미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를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근본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동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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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ns V Braves X

예수님은 자신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제자들에게 손을 잘라라, 눈을 빼라는 등의 말씀을 하신 것은 진짜로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하니 잘 지키라는 뜻으로 강하게 비유를 드신 것이다.

마가복음 1123절과 24절의 말씀을 보면 산을 움직이는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산을 상상한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드신 강한 비유였다. 강력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던 것이다. 제자들은 그나마 예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이 정도로 예를 드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예수님이 관계적이면서 기능적인 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말씀의 완급을 조절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야구장의 투수를 한번 상상해 보자. 투수가 계속 똑같은 스피드로 공을 던진다고 하면 타자가 어떻게 할까. 아주 치기 좋을 것이다. 투수는 완급을 잘 조절해야 좋은 투수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빠른 공을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느린 공을 던진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변화구를 던졌다가 어떤 상황에서는 유인구를 던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공을 던지는 목적이 무엇인가. 타자를 아웃시키길 원해서다.

예수님도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였던 것 같다. 어떤 때는 강한 어조로 말씀을 전하셨다가 어떤 때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잘 못 알아듣게 비유로 말씀하셨다가 어떤 때는 그냥 직설적 명령을 한다. 여기서 그 분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 세상의 구원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완급 조절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야구를 잘 하셨다면 제구력이 뛰어난 그리고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였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마치 계속 빠른 공만 던지는 투수로 생각할 때가 있다. 항상 빠른 직구로 상대에 직격탄을 날리는 분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완급을 조절하는 제구력(control)이 뛰어나고 커맨드(command)가 좋은 투수였을 것이다.

야구를 볼 때도 그렇다. 투수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졌느냐만 보면 야구 정말 재미없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 투수' 그렉 매덕스의 환상적인 완급 조절의 경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완급 조절, 컨트롤 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야구팬은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그래서 공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된다.

예수님의 사역도 비슷했다. 예수님을 그저 직구만을 던지는 투수로 이해했을 때 성경은 싱겁기 짝이 없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을 완급 조절을 잘 하는 투수로 이해한다면 성경의 다이나믹한 면과 유연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마가복음 11장의 말씀도 그렇다. 예수님을 직구 투수만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럼 산을 움직이지 못하면 믿음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완급 조절이 뛰어난 투수로 이해하면 "아 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들도 믿음을 가지면 이겨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산과 같이 앞에 우뚝 서 있는 장벽이 많이 있다. 그런 장벽을 기도와 믿음으로써 넘어서야 하는데 우리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옆에 계심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 장벽을 넘어서든지 아니면 그것을 장벽으로 느끼지 않게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예수님은 완급 조절을 잘 하시는 투수였다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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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을 놓고 결정을 내릴 때  (0) 201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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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 Ho Park (2000)
Chan Ho Park (2000)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스포츠는 멘탈 게임이다. 멘탈(mental)에 영향을 미치는 두 종류가 있다. 내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이 바로 그것인데 두 가지 모두 잘 컨트롤이 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정신적인 것 또는 감정적인 것의 컨트롤은 매우 중요하다. 감정 컨트롤을 못 하고 잘못 표현했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변에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은데 이들은 사소한 것에서 문제가 발단이 돼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성격 차'라는 명목 하에 이혼을 택한다. 이는 감정 즉, 멘탈 적인 것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정에 충실한 결정이었다고 적당히 둘러대지만 감정은 충실한 대상이 아니라 컨트롤 대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큰 일을 망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98년 월드컵에서 하석주 선수가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해 무리한 태클을 걸다가 퇴장 당해 한국의 13 역전패에 원인이 됐다. 이는 ‘너무나 좋았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였다. 이렇게 감정은 삶의 내용을 결정하게 된다.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서 뛰던 시절 좌익수 개리 셰필드의 결정적인 에러(안타로 처리되긴 했지만)후 홈런 2개를 허용했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데 당시 그는 감정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이런 일을 당했다. 감정이 하라는 대로 공을 던지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 대신 부정적인 감정이 일을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던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 자신의 감정 컨트롤을 잘 해 좋은 결과를 냈다. 감정은 순간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야구에서는 홈런을 친 후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면 다음 타석에서 거의 대부분 빈볼의 피해를 당한다고 한다. 빈볼(Beanball)은 타자의 머리를 겨냥한 투구다. 요란한 제스처는 상대 투수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자들은 홈런을 치고 나서 감정 컨트롤을 해야 한다. 물론 대기록을 세울 때는 컨트롤을 하기 힘들고 상대 투수도 이해를 해주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정 다스리기를 잘 해야 한다.

또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 있는 투수들을 보면 95-96마일의 강속구를 던진다. 이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무작정 뿌려대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투수들도 파워 피처라면 대부분 이 정도는 던지지만 컨트롤 생각하고 6-8회 정도 던질 것을 고려하기 때문에 3-4마일 늦춰서 던진다. 마이너리그 투수들은 아직까지 감정 컨트롤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컨트롤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한번 돌아보자. 순간적인 감정으로 자살 사이트의 내용을 보고 자살을 택한다든가 폭탄을 만든다든가 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이는 '소속이 분명치 않은 감정'을 내가 다스리지 못하고 감정에 따라 다녔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조금 작게 보면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 감정 싸움이 시작되면 속된 말로 '개판 일보직전'까지 갈 때도 있다. 이에 대해 심각히 생각하는 운영자들은 '감정 컨트롤 도구'를 만들어 놓고 독자들이 익명을 활용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 그렇지 않은 운영자들은 그저 조회수 많고 사람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방관을 하게 된다. 감정 컨트롤을 하지 못한 인터넷 게시판의 결과는 뻔하다.

남을 향한 분노는 나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심리 전문가들의 말처럼 감정을 쏟아 붓는 것은 나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감정을 잘못 표현하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평생 후회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가. 지금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나의 화를 가져가 주시고 내가 더 낮아질 것을 기도해보자. 놀랍게도 감정 컨트롤이 잘 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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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down
Showdown by jsnell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독일의 천재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살인마' 히틀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암살'이라는 것은 일단 사람을 속여야 하는 일이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기에 촉망받는 신학자인 그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차를 몰고 돌진하는 어떤 미친 운전자(히틀러)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운전대를 빼앗기 위해" 거사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 상황에서는 '정의와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암살 계획은 그러나 수포로 돌아갔고 본회퍼를 포함한 저항 동지들은 게슈타포에 체포되었다. 본회퍼는 1945 49, 히틀러의 특별 명령에 의해 사형됐다. 본회퍼의 이야기는 '진실과 거짓' 그리고 '정의와 평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놓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독재자가 목에 총을 대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할 때 우리는 진심을 감추고 따른다. 비겁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살겠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진심'을 드러내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진실'을 위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진심'을 숨긴 사람을 비겁하다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스포츠계에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호세 칸세코가 '메이저리그 스테로이드 사용'을 폭로하기 전까지 이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진실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인가. 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혼란에 빠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알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스테로이드 사용은 잘못된 일인데..."라고 생각하면서 폭로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물론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이를 '장려'했던 리그의 고위 관계자들은 명백한 '거짓말쟁이'였다.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은 수년 전 "단장이 되고 싶지 않은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단장은 거짓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 프로 스포츠의 단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거짓말쟁이야(You are a liar)"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는 아주 '얇은 선(thin line)'이 있다. 단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그러나 '집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자의 질문에 거짓 답변을 했다면 그 단장은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줄어든다. 물론 '얇은 선' 때문에 '진실과 거짓'은 그것을 쉽게 넘나드는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는 맹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매일 싸워요. 싸울 때 입에 담기 어려운 더러운 욕도 하고 때로는 폭력도 써요"라고 어떤 점잖은 남자 또는 여자가 공개적으로 밝혔다고 하자. '진실'을 말하긴 했지만 이는 '거짓말'보다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황우석 박사는 아마 이 '진실과 거짓'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진실'을 말했을 때의 파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다보니 점입가경이 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USC의 풋볼 스타였던 레지 부시는 부모가 아마추어 선수인 아들의 능력을 이용해 불법적인 혜택을 받았다는 의심을 받음에 따라 곤란한 상황에 있었다. 그는 "부모의 재정 상황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아파트에서 살던 부모가 70만 달러가 넘는 고급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그 뒷배경을 큰아들이 모를 리 없다. 부시는 앞으로도 "모르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부시가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를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진실'을 고백하면 이 일과 상관없는 소속학교(USC)가 엉뚱한 피해(2005년 성적 몰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을 놓고 고민할 때 이것이 '정의와 평화(질서)'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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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기념일은 매년
1월 세 번째주 월요일이다. 이날엔 미국 내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그는 대부분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역사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 내에 뽑힐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미국의 '인종차별 완화' '평화운동'에 지대한 공을 세운 바 있다. 물론 그를 도왔던 아내(코레타 스캇 킹)와 가족 그리고 지인 흑인 및 백인 인권운동가들이 없었더라면 그는 위대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모두를 기념할 수 없기에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대표로 내세워 그들의 공로를 칭찬하고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간접적으로 스포츠 스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06년의 일이다. '원수'처럼 지내던 NBA 수퍼스타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2006 115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날에 화해를 했다. 두 선수 모두 "킹 목사를 기리며 화해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둠은 어둠을 제거할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사라지게 한다. 미움이 미움을 제거할 수 없고 오직 사랑만이 미움을 녹일 수 있다"라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운 화해'였다.

변방에서 주류 사회에 진출해 성공을 한 흑인 선수 중에는 가난한 흑인 사회로 돌아와 시간과 금전으로 봉사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해군제독' 데이비드 로빈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은퇴 후에도 샌안토니오 지역에 다인종 학교를 세워 '교육적 변방인'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를 비롯해 흑인 사회로 돌아와 봉사를 하는 흑인 선수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 감동을 받았다.

"대부분의 흑인은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피부 색깔로 인해 대부분 실패합니다. 흑인에게는 정상적인 교육 환경이 제공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적 경제적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회를 얻고자 할 때 사람들은 '네가 네 힘으로 시작해 자립하라'고 말하지만 흑인은 맨발이라는 사실 그것이 자립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합니다."

홈리스를 돕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전 LA 레이커스 스타 로버트 오리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MLK). 흑인 선수들 중 그를 존경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MLK와 그의 동료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흑인 선수들이 프로 스포츠에서 주류가 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한 목숨을 내건 그의 사투 덕분에 미국에서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이 정도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인들도 할 일이 있다. 우리의 입과 마음에서 '깜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제거하는 것이다. 타이거 JK라는 힙합 가수가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아갔으 때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 한국에서 그 착한 한국 사람들이 '깜둥이'라는 표현을 너무 쉽게 한 것에 그와 그의 흑인 친구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 결심만 해도 우리는 그의 인권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
. 우리 모두 함께 용기를 내어 결심하기를 바라며….[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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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사진=밝은터]


스포츠 경기를 보면 경기 후에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또 우승 소감, 승리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답변하는 선수들이 가끔 있다.

침례교 목사이자 전 프로풋볼(NFL) 선수인 레지 화이트(작고)는 선수시절 '주님이 인도하심에 승리를 할 수 있다'고 까지 말을 하곤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최경주(PGA투어) 선수는 라운드를 마무리 짓는 퍼트를 성공시킨 후에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올려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또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나 경기 내용을 적는 기자들은 때로는 '신의 간섭(divine interventio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스포츠와 종교가 관련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스포츠 경기와 종교는 정말로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종교계리더들은 '확실한 것은 절대자가 경기 결과를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한다.

8년 동안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로 활동했던 에드 시포 신부는 "더 종교적인 선수가 더 잘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하나님이 승부를 결정한다면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풀러 신학대학원의 리처드 마우 총장도 "하나님은 모든 일에 관련이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특정 경기의 승패는 관련이 없다. 하나님은 그린베이 패커스 팬도 덴버 브롱코스의 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밴더빌트 신학대의 조셉 휴 학장은 "하나님은 선수들이 패배의 아픔을 겪을 때 힘과 능력을 주는 역할은 하실 것이다. 그러나 승패를 결정지으시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스포츠와 종교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한 풋볼 선수는 "우리는 단순히 승리를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큰 부상을 당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승리하든 패하든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시포 신부는 "종교의 긍정적인 영향은 물론 있다. 특히 마이너리그 야구의 경우 선수들간의 시기와 경쟁이 극심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함께 기도하면 서로를 이해하고 동료애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프로농구(NBA) 뉴욕 닉스의 경기 때마다 코트의 중앙에서 기도를 인도했던 볼티모어 그레이스 교회의 존 러브 목사는 "기도가 승리를 안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게 됐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면 자신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믿음은 때로는 특정선수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도가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데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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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mbler!


어떤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런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났나'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근원적 의도 또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면 정답에 근접하게 된다.

몇 년 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투수 케니 로저스가 손에 송진을 바르고 공을 던졌다는 보도가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문제 제기를 한 목적이 정말로 순수한 '페어 플레이' 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인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대도시 팀의 탈락으로 2006 월드시리즈에 전국적인 관심이 낮아지자 사람들을 자극할 거리를 찾고 있던 방송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케이스다.

'목적이 이끄는 삶(저자 릭 워렌)'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로 인기를 누린 바 있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메이저리그에 스테로이드 파문이 불거졌을 때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야구를 즐김이 목적인 사람은 "스테로이드 그 까짓것"이라고 말을 했고 야구를 삶의 일부로 본 사람들은 "스테로이드를 야구계에서 말끔히 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구를 삶의 일부로 본 사람들 중에는 미래의 야구 스타를 꿈꾸는 학생 선수들의 부모도 포함된다.

로저스 사건이 터졌던 비슷한 시기에 야후 스포츠가 USC 트로잔스 명문 풋볼팀의 문제를 끄집어내자 목적이 다른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사건을 다뤘다. 10 컨퍼런스측은 USC가 무너지면 안되겠기에 축소 조사를 했고 LA 지역 언론도 USC의 성공과 연관이 있는 시청률 및 구독률을 고려해 집요한 취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많은 사람의 목적이 '건전한 대학 스포츠'로 집중됐더라면 이 일을 계기로 변화를 추구했을지 모른다.

또한 축구 월드컵이 열리면 축제와 세계 화합은 목적에서 밀려나고 다른 여러 이유가 목적으로 자리잡는다. 한국은 월드컵에 참여하는 목적이 16강 진출인 양 여론이 형성된다. 동 하계 올림픽도 근본정신인 평화 평등 페어 플레이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고속성장 국가 이기주의 맘몬(Mammon)주의가 판을 치게 됐다.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basics)'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는 왜 시작되었는지 그 기본 정신은 무엇인지 왜 우리는 스포츠를 하고 보고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 주변에서 서성이는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목적이 올바르지 않을 때 우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릭 워렌이 쓴 이 책의 제목을 좀 바꾸면 좋겠다. '정당한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정당성'을 누가 가늠하는가는 역시 우리가 풀어야할 과제이지만 정당한 목적을 찾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좋은 출발점임이 틀림없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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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Woods announces he will take an indefinite break from golf

스포츠 에이전트로 활동했던 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e-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의 몸값에 대한 기사를 연일 올리고 있었다. 독자들은 재미있게 글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왠지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고 평소에 거의 하지 않는 '댓글 올리기'를 했다.

"선수들 몸값이 올라가면 결국 소비자들에게 그 몫이 돌아가는데 연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연봉을 적게 받는 이유에 대해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시나요?"

하루 정도 지나니까 에이전트 출신 블로그 운영자의 답변이 올라왔다.

"메이저리그의 수입 대부분은 TV 중계권료에서 오는 것이니까 소비자들에게는 피해가 없습니다."

그럴 듯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가 놓친 부분이 있었다. TV 중계권료는 어디서 오느냐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TV 방송사들은 광고수입으로 운영을 한다. 크게 올라간 중계권료를 내려면 광고비를 인상해야 한다. 광고주는 상품 가격을 올려서 그 비용을 충당한다. 비용 상승의 '연쇄 효과(ripple effect)'가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소비자의 몫이 된다.

연쇄 효과의 3-4단계를 거치면 소비자들이 이런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품 시장'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또 하나 더 있다. TV 중계권료가 주수입원이라면 왜 티켓 가격과 식음료값 및 기념품 가격을 올릴까. 이 질문을 했다면 그 에이전트 출신 블로거는 '물가가 오르니까 그렇겠죠'라고 답했을지 모른다.

메이저리그는 매년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그 어느 누구도 그 혜택을 팬들에게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소비자들은 메이저리그가 팬들에게 얼마나 부담을 지우는지 살펴봐야 한다. 각 구단은 선수들의 몸값을 지나치게 올려놓고 "구단 경영이 어려워서…"라며 티켓 가격 식음료 가격 등을 슬그머니 올린다. 그것에 대해 소비자 단체 등이 싸워야 하는데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와 5 2억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나이키 골프의 연매출은 5억 달러 정도이고 우즈에게 연 4천만 달러를 줘야 한다면 이는 전체 매출의 8%인데 그의 몸값은 결국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 때 떠안는 부담이 된다. 우리는 일주일에 10-50달러만 받고 나이키 제품을 만드는 아시아의 노동자들도 생각해야 한다. 스폰서 비용을 줄여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우즈가 태국인 모친 슬하에서 자랐던 점에서 그는 마치 '동족의 아픔을 깨닫기 전의 모세와 같은 인물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즈는 2009년에는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부에 지나치게 치우친 그가 삶을 깊이 있게 바라보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성경에서는 솔로몬이 그랬고 다윗이 그랬다. 부와 교만은 항상 함께 따라온다. 명예와 명성도 마찬가지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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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 Ho Park Baseball Clinic for Children
Chan Ho Park Baseball Clinic for Childre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프랑스어인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는 이 사회에서 가진 자가가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이 용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의무(Oblige)'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하기 싫지만 사회적인 눈 때문에 해야 한다'는 속뜻이 있는 용어다. 그 사회적인 눈에 눈치를 보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Noblesse)이다. 사회의 눈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 스포츠 분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그들은 싫어도 해야 한다. 경제적 상류층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미국의 각 프로 구단은 미디어 가이드(Media Guide)라는 것을 매년 발행한다. 미디어 가이드는 구단의 모든 정보를 담은 책으로 일반인들도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는 구단 관계자와 선수 및 코치들의 프로필이 상세히 나온다. 나는 미디어 가이드를 볼 때 특별히 시선을 두는 곳이 있는데 바로 사회 참여 부분이다. 특정 선수나 코치가 노블레스 오블레쥬의 개념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이다.

각 구단의 미디어 가이드를 살펴보았더니 사회 참여에 열심인 선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4-5곳의 단체와 연결이 돼 자신의 시간을 쓴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을 방문했을 때 "우승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해 듣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한 적이 있다.

물론 하기 싫은데 '의무감'으로 이런 일을 하는 선수들도 있는 것 같다. 취재를 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라는 말을. 그래도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뻐' 보인다. 우리 주변에는 의무감조차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나중에 '거룩한 의무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한국 선수들 중에는 박찬호(야구 선수)가 꾸준히 자신의 시간을 한인 사회를 위해 썼던 것 같다. "그 정도도 못하겠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도 못하는 선수가 대부분이기에 그런 그의 활동은 눈에 띈다.

연봉 순위를 산정하는 전문 웹사이트에 따르면 연봉이 3만 달러 이상이면 전 세계에서 개인 수입 랭킹 상위 10% 안에 든다고 한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에 사는 많은 사람이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생각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민자들은 '난 가난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돕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은 먹고 산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지구촌에는 너무나 많다.

한 사회 봉사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고. 구약성서 신명기를 읽어보면 가난한 이웃, 어려운 이웃, 소외된 이웃을 돕는 게 당연한 의무라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자가 있다면 마음에 우러나지 않더라도 '의무감'으로라도 찾아나서면 어떨까. 아니면 지금 대화가 필요한 그들에게 전화 한 통화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으면 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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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 August 04, 2007

지금은 2107. 배리 본즈라는 선수가 행크 애런의 개인 통산 홈런 기록(755)을 경신한 지 100년이 지났다. 100년 전에는 본즈의 대기록 작성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파일 사이즈 2GB의 고화질 동영상을 1초 만에 다운로드해 당시 대기록 작성 상황을 지켜봤는데 나름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언론의 옛날신문을 검색해서 읽어봤다. LA 타임스, 뉴욕 타임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등에서 100년 전에 게재한 글이었다. 대부분 기사는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은 홈런 기록이라는 내러티브였다. '실제로 일어난 일(story)' 756호 홈런을 때려낸 것이었지만 이에 대한 내러티브는 '사실'보다 작게 느껴졌다. '역사적 지식' '실제로 일어난 일'과 동일하지 않다는 역사가들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역사' '사실'보다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홀로 때로는 섞여서 존재한다. 현실에서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을 차용했는지 어떤 부분에 의미를 부여했는지가 기록으로 남게돼 후세의 사람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될 때도 있다.  

100년 전에 배리 본즈가 756호 홈런을 때려낸 것이 '역사'이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자(역사가, 기자 등)들의 관점에 따라 '역사적 지식'은 다르게 전달됐던 것이다. 그것이 스테로이드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본즈가 756호 홈런을 기록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에도 내러티브에 따라 '사실'이 아닌 것처럼 묘사될 수도 있다.

101년 전 한국(그때는 통일 전이었으니까 남한)에서는 황우석이라는 서울대 교수가 줄기세포와 관련된 논문 조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록이 옛날신문에 있다. 그가 논문조작을 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지만 그의 나머지 연구업적마저 모두 조작처럼 묘사되어 한국은 스스로 어려움에 빠졌던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는 부정적인 내러티브의 홍수 속에 '사실진실이 묻혀버린 안타까운 사실이다.

2100년 전 1세기에 살았던 예수님도 후세 역사가 및 기자들의 부정적인 내러티브에 의해 난도질을 당해 결국 그가 했던 '역사적인 일'은 거짓 나레이터에 의해 조작된 일로 치부되곤 했다.    

100년 전에 본즈가 755홈런을 넘어섰던 것은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조작을 하려해도, 치밀한 내러티브로 가리려고 해도 '팩트' '팩트'인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첨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즈의 기록 옆에 별표(*)가 있고 '스테로이드 논란 속에서 홈런 기록을 세웠음'이라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첨언은 가능한 것이다.

스테로이드 도움이었든 아니었든 본즈가 755홈런을 경신한 것 자체를 '사실이 아니다'라고 우겨버리면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내가 본 것 외에는 믿을 수 없다'는 사고를 가진 사람과는 역사를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100년 전 스타인 본즈에 대해 첨언한다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존경받는 당대 최고의 타자로 기록됐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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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에 다녔던 분들은 모두 알겠지만 지정된 도서를 읽고 학생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논지(Thesis)를 찾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친절하게 논지를 서술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생은 책을 읽으면서 논지를 찾아내야 한다. 논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책을 읽은 것이 허사가 된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책을 전체적으로 한 번 훑어보는 일은 중요하다. 논지가 파악되지 않으면 상세한 내용을 알더라도 그것은 헛된 지식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논지가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성서를 읽으면 그 안의 내용을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한 성경학자는 나와의 대화에서 성경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온 세상에 대한 언약적 사랑(covenantal love)을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통해 실현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논지를 모른 채 성경을 읽었다면 헛된 지식만을 쌓아둔 것이 된다.

LA 레이커스의 감독인 필 잭슨이 쓴 '마지막 시즌(The Last Season)'의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들(기자들 포함)은 그 책 안의 가십거리만 잔뜩 발췌해 이를 '공격 무기'로 활용했다. 특히 "코비는 코치하기 어려운 선수(uncoachable)"이라는 표현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수천 번 인용됐다. 이는 마치 약 2000년 전에 "독사의 자식들아(the brood of vipers)"라고 말했던 예수의 발언만 반복해서 인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잭슨 감독의 논지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시즌'의 논지는 "별의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나는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였다. 그의 농구에 대한 사랑이 '마지막 시즌'의 논지였다. '코치하기 어려운 선수'인 코비 이야기는 여러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고 이 책의 논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아니었다.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를 책 전체의 논지인양 기자들은 치부해버렸다. 그게 논지였다면 책 제목은 'Uncoachable Kobe(지도하기 어려운 코비)' 정도가 됐을 것이다.

 '마지막 시즌'이었지만 그는 농구 코트에 대한 미련이 있었고 결국 책을 출고한 얼마 후에 레이커스의 감독으로서 복귀를 했다. 그것도 'uncoachable'한 코비가 뛰는 팀으로 복귀를 했다. 언론은 코비와 필 잭슨의 관계가 180도 달라진 것처럼 표현했지만 '마지막 시즌'을 읽어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잭슨은 오히려 코비가 자신의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렸고 제자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를 원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분명 그런 내용이 있다.

 책을 읽을 때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이 정말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코비와 필 잭슨의 관계에 대해 기사를 썼던 기자와 독자들 중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책을 다시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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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ai Ladies Masters - Round Four

몇 년 전에 미국 오렌지 카운티에서 열렸던 '아버지 교육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세미나에는 10대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참석했는데 질문과 답변 시간이 매우 유익했다. 아버지들의 질문에는 이시우 심리학 박사, 여천기 정신과 의사가 답변을 했다.

한 아버지가 질문을 했다. "우리 아이는 학교, 교회, 예술활동 등에서 열심이었는데 어느 날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I hate...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I hate school, I hate church 등등.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시우 박사는 이에 대해 "아이가 탈진(burnout)된 겁니다. 너무 많은 것을 시키셨네요. 학교 가는 것만 빼고 활동을 모두 중단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이 박사는 "아이들이 많은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overload)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하라는 대로 하지만 부모가 완벽하지 않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면 부모를 원망하면서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여러 사연을 접하면서 나는 골퍼 미셸 위(한국어명 위성미)를 생각했다. 이 박사가 말했던 두 영어 단어가 생각났다. overload burnout. 어린 나이에 유명해진 미셸은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다. 학교 공부하랴 인터뷰하라 골프 연습하랴 미 전국으로 이동하랴 너무 바빴다. 미셸은 아주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일들이 '재밌다(it is fun)'고 했지만 비난이 쏟아지면서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되지 못했다.

미셸은 계약에 따라 대회에 참가하는 의무적인 일을 했다. 마치 '부모의 강요로' 이곳저곳에서 학원 교육을 받는 미국 내 한인 청소년들처럼 말이다. 미셸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참 잘 견뎠다는 생각도 든다.

결과는 참담했다. 여자 대회인 LPGA 투어에 출전하면 상위권에 올랐던 그는 한동안 기권 아니면 최하위에 머무르는 평범 이하의 선수로 전락했다. overload로 인한 burnout의 결과다. 미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된 것이 미셸에게 '(fun)'이었지만 지금은 프로 선수로서 ''과 연관되어 경기에 임해야 하기 때문에 더는 '(fun)'이 아닌 상황에 있다.

미셸에게 가장 바람직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아마추어 선수로서 학교 공부에 충실하면서 아주 가끔 '(fun)'으로 성인 대회에 출전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성인으로서 준비가 될 때 프로로 전향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2009년에 미셸은 첫 LPGA 우승을 차지해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미셸 위의 overload burnout은 미국 내에 거주하는 많은 한인 1.5세 및 2세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학교 공부 외의 과외활동으로 수용 용량을 초과해 탈진(burnout) 직전의 상태에 있다. 한국의 청소년도 비슷하다. 이들은 '빨리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는' 꿈을 꾼다. 아이들이 18세가 돼 독립심과 도전정신 때문에 집을 떠나는 게 아닌 집이 싫어서 떠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고자 하는 대학을 결정할 때 '집에서 먼 곳이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들에게 가정은 overload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정은 쉬운 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형제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무엇을 하려고 하면 방해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했던 것 같다. 가정은 참으로 좋으면서도 부담과 탈진의 원인이 되는 곳이다. 이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면 좋을텐데 쉽지만은 않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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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말과 신년 초에 무료함을 달래고자 책장에서 먼지를 친구 삼아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아마존 닷컴의 도서평이 매우 좋아 몇 달 전 구입했던 이 책의 제목은 'Marginality(변방)'이고 저자는 드류 대학의 신학자인 이정용(Jung Young Lee) 교수다. 과거 미국 주류 사회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 책은 미국의 변방에 있는 아시아 이민자들의 과거 역사 현주소 및 미래를 다뤘다.

이 교수는 "많은 아시아 이민자가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중앙에서 노란색 피부의 변방인을 반기지 않았다. 중앙으로 향해 갈수록 변방의 사람들은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시안 이민자 2세들은 중앙으로의 진출을 거절당해 아시안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낀 존재(in-between)'가 됐다. 그것으로 인한 좌절감은 변방에서 마음 편안하게 지내겠다고 결정한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이정용 교수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는 "미국은 다원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은 멜팅 팟이 될 수 없다. 모자이크 사회가 될 것이다"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모자이크 사회가 미국을 위한 적절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이크는 변방에 있어도 모든 구성원이 중요한 조각(piece)인 그런 사회다.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려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회다. 이는 현실로 이뤄질 수 없는 이상적인 사회일 수도 있지만 이 교수의 모델은 모든 이들에게 평안을 안겨줄 수 있다. 중앙에 있는 힘있는 자도 변방에 있는 힘없는 자도 자신의 자리에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그런 사회의 모델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스포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한국계 또는 한인 선수들이 변방에서 중앙을 향해 달리다가 마음고생을 했고 이것은 곧 주변인들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시련을 겪은 후에 성숙해질 수도 있지만 반면 상처로 가득해 이 경험이 마음의 칼날을 갈게 할 수 있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달렸던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칼 가는 사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중앙에 편입된 후 그들 대부분은 변방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에게 "누구시죠?"라는 시선을 보냈다. 뜨니까 변방은 무시했던 것이다. 변방은 그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중앙에서도 소위 한국인 스타를 완벽히 받아들이지 않는데 있다. 결국 그들은 여기도 저기도 속할 수 없는 '낀 존재'가 된다. 스포츠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더 이상 '낀 존재'가 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변방의 스포츠인들은 '쌍방향 존재(in-both)'가 되어야 한다. 변방도 중앙도 모두 챙기는 그런 인물이 된다면 그들은 자신이 목표한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자이크 사회의 모델이다. 우리가 '낀 존재(in-between)'가 될지 '쌍방향 존재(in-both)'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정용 교수는 장벽을 '초월하는 존재(in-beyond)'가 될 것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역사의 인물 중에 예수가 그런 존재라고 했다. 예수는 유대인 사회에서 중앙이 아닌 변방에 있던 분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모자이크 모델이 아주 불가능한 공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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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Penn State v Northwestern

스포츠는 우리가 리더십(Leadership)을 가장 가깝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리더십 관련 베스트셀러인 '거인들의 발자국(한홍 저)'에는 스포츠계 리더들의 이야기가 자주 소개되는데 이는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리더십을 자주 경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포츠 분야의 리더십은 일반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리더십 관련 책자에 스포츠계 리더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다.

갑자기 리더십을 거론하는 것은 오랫동안 미국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지도자였던 펜스테이트 풋볼 팀의 조 퍼터노(1926년생)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지도력을 창출한 인물이었다.

대학풋볼팀인 펜스테이트 몇 년 동안 극도로 부진했다. 그런데 퍼터노 감독의 생각 변화와 함께 성적도 변했다. 2004 47패를 기록했던 펜스테이트는 2005 111패의 호성적을 냈다. 2005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 전문가들은 그해가 퍼터노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펜스테이트 감독으로만 40년 동안 활동한 그가 새 시대의 조류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집쟁이 영감'으로 남아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선수들이 펜스테이트 입학을 꺼려하자 퍼터노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2005년 프리시즌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고백한 후 40년 동안 지켰던 '전통'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과거에는 신입생을 무조건 기용하지 않고 졸업반 선수는 웬만하면 기용했던 그가 실력에 따라 출전 기회를 준 대목이다. 이제 1학년 선수가 실력이 있으면 출전 기회를 얻게 됐고 실력 없는 4학년 선수는 벤치를 지키게 된 것.

이는 전통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중대한 시도였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전통만을 고수하려고 했던 퍼터노의 이러한 '변심'은 리더십과 포스트모던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예화가 되고 있다.

퍼터노는 두터운 뿔테안경을 쓰고 바지를 높이 추켜세워 입는 외모상으로도 전통의 대표 주자였기 때문에 그의 변화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의 외모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리더십에는 수정이 있었던 것이다. 1학년생 기용과 함께 그는 공격 방식도 현대식으로 수정했고 빠른 리시버를 자주 활용했다.

또한 선수들을 사관생도로 취급했던 그는 선수들의 개인적인 성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태어난 인터넷 세대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다.

신학자인 에디 깁스는 "이 세대는 장기적인 것보다는 즉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고 이 세대의 사람들은 다양성을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스티븐 코비도 '원칙 중심의 리더십'에서 "각성한 지도자들은 만성적 문제들을 그 증상만 피상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더 나은 사회(집단)를 창조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먼저 변화시키고 신뢰를 쌓고 구조와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했는데 퍼터노는 리더십 전문가들의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퍼터노 감독이 전통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좋은 전통은 유지하고 시대에 맞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렸다. 퍼터노 감독은 이후 2009년까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후기 현대 사회는 순서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옆에서 존재하고 있다. 좋은 전통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자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을 전통주의자라고 불렀다. 요즘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을 '죽은 자'로 표현한다. 80대의 노인도 변화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했다. 40-60대의 '젊은이'들은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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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1 몇 년 전의 일이다. 대학 재학 시절 역사 과목의 필수교재였던 '서양의 경험(The Western Experience to 1715 출판사 McGraw Hill)'이라는 유럽 역사 교과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시절에는 그저 점수를 받기 위해 읽었던 내용이 10여 년이 흐른 후인 지금은 정말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럽 역사책을 읽으면서 굵은 흐름이 한 줄기 잡혔는데 바로 흥망의 역사였다. 4세기 이후 유럽의 정치는 항상 기독교와 협력 및 견제의 관계에 있었는데 여기서 보이는 흥망은 너무나 뻔한 원인으로 반복됐다. 정치든 종교든 개혁을 하면 흥하다가 또 그 개혁 세력이 힘을 얻고 부패하면 망하고 다시 개혁하고 힘을 얻고 난 후 게을러지면 망하고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나마 개혁을 반복했던 세력은 망한 듯하면서 살아났지만 그런 시도마저 하지 않았던 세력은 역사 속에서 잊혀졌다. 정치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너무 많은 이득을 챙기고 민심을 거스르고 독단적으로 행동할 때 그 권력 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미난 사실은 이러한 역사의 시행착오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흥망의 역사는 같은 이유로 반복하고 있다. 개혁 세력이었다가 힘을 얻고 나면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쇠퇴하는 정치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야기#2  스포츠 기사를 읽고자 USA투데이와 ESPN.com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때마침 첫째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아빠 뭐해요? 같이 봐요"라고 했고 나는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면서 두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 스포츠 소식이 궁금해 모 사이트를 들어가는 순간 기자는 "성진아 잠시 방에서 나가 있어라"고 했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어린 아이가 보기에는 민망한 그래픽이 한국 스포츠 사이트에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이트에도 그런 그래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령껏 잘 피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인데 한국 사이트는 야한 장면이 사이트 전체에 도배되어 있어 도무지 요령을 피울 수 없다. '이런 웹사이트도 처음에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으로 순수하게 시작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간의 부()' '명성'에만 몰두해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 듯했다.


이런 현상은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분야에서 눈에 띈다. 이탈리아 축구리그의 스캔들이 그랬고 메이저리그 야구의 스테로이드 파문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야구가 정화작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감추기만 한다면 상처의 깊이는 더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는 기자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보여준 결과다. 지금 당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버티면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고 그러지 않았던가. 민심은 그들의 위선적 행위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진짜 민심'은 이럴 때 침묵하며 결정적인 순간이 들고일어나게 되어 있다. 유럽 역사가 그랬고 북미 역사가 그랬고 한국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자녀와 함께 보기에는 민망스러운 한국의 스포츠 웹사이트(요즘은 일반 웹사이트도 마찬가지)는 심각할 정도로 '선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하면 잠시 동안 조회수가 올라가고 인기 사이트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잠시 보고 즐기기는 하겠지만 깊은 내면에서 '이게 언론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웹진에 대해 찌라시라는 인식이 점점 확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문을 닫거나 무시당하는 언론이 되지 않을까. 이것은 기자의 사담이 아니라 역사에서 입증하는 내용이다. 어느 역사에서 봐도 지식인들이 도덕과는 담을 쌓고 살고 시민들을 힘과 부로써 압제하면 그 사회(도시 또는 국가)는 반드시 무너졌다. 이는 거의 진리처럼 맞아떨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개혁이 필요하다. 개혁하면 역사는 인정을 했다. 이전의 잘못을 용서해줬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화만 내는 하나님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등을 돌려 하나님을 보고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사야서에도 아모스서에도 인간이 회심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받아준다는 메시지가 있다. 지금 회심하자.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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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halom Community Center. 2006/01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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