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행복한 소명찾기[LA중앙일보]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기사입력: 04.13.10 16:00
스코트랜드의 목사이자 철학자였던 토머스 찰머스가 했던 말은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찰머스는 행복의 필수 요소를 1)할 일 2)사랑할 대상 3)소망으로 보았다. 인간이 할 일이 있고 그 일에 사랑할 대상이 있고 그 일에 소망이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게 찰머스의 설명이다.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신이 창조를 위해 했던 일을 이어받은 축복이다.

'일과 예배'라는 책을 썼던 벤 패터슨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연간 1만 달러 이하의 수입을 받으면서 어렵고 고된 일을 할지언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끊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일 자체에 거룩함과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창조주의 동역자가 되고 그의 청지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은 위에 소개한 두 사람이 말하는 일과는 180도 다르다. 일이란 가치있는 일을 의미한다. 가치가 있는 일이면 수입을 묻지 않는다는 게 찰머스와 패터슨이 의견일치를 본 부분이다.

어떤 일이 가치가 있을 때 그 일에서 사랑할 대상이 생기고 또한 그 일을 통해 소망을 얻게 된다. 찰머스의 행복을 위한 필수 요건을 약간 수정한다면 1)할 일 2)거룩한 사랑할 대상 3)거룩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하면 직업(occupation)과 소명(vocation)을 구분할 수 있다.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해 갖는 것이다. 거룩한 사랑의 대상과 소망 없이 그저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명은 거룩한 사랑의 대상도 뚜렷하고 소망도 선명하다. 그래서 패터슨은 "직업은 많으나 소명은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때로 우리는 직업과 소명을 따로 가질 수도 있다. 가장 행복한 이는 아마도 직업과 소명이 같은 사람일 것이다. 즉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소명인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소명에는 거룩한 사랑의 대상이 있고 거룩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는 많은데 거룩한 사랑의 대상이 없고 소망이 없다면 이는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때로는 가치 없는 일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사람에게 소명이 없다면 그 사람은 억만장자라고 해도 행복할 수가 없다. 수억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자가 왜 자살을 선택할까? 우리 부모 세대는 여전히 자녀가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택하길 원한다. 자녀가 그 직업을 소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소명이 있는 자는 일이 즐겁다. 일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에 휴가를 따로 즐길 이유를 찾지 못한다. 물론 휴가나 쉼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 같이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회 은퇴를 꿈꾸는 사회에서는 쉼이 부정적으로 교육될 수 있다. 소명이 없기에 일은 괴롭고 주말을 기다리고 빠른 은퇴를 원하는 것이다.

소명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가까운 가정을 보면 소명을 찾을 수 있다. 함께 할 일이 있고 사랑할 대상이 있고 소망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주부라는 직업 그것은 가장 위대한 이 땅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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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e
    2010/07/0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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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을 정성들여 하는 것에서 부터, 소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같습니다.
    • 밝은터
      2010/07/05 20: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사소함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소핟도 중요함에 포함된 것인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일에 충실한 이들이여...축복 받으리라...


[생활 속에서] 도둑질을 보상한 예수[LA중앙일보]
박병기/Jesusinculture.com 운영자
기사입력: 05.25.10 14:55
수 년 동안 작업을 한 음악인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배포되었다면 이는 단순히 돈문제가 아니라 그 작업을 한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충격까지 안겨줘 외상을 입힌 것이나 다름 없게 된다. 미국에서는 그래서 저작권법을 굉장히 비중있게 다룬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많은 사람의 재산을 알게 모르게 가져가는 합법적인 도둑질이 미국에 만연해 있다.

의사가 보험에 대해 치료비를 과다 청구한다든가 변호사가 돈을 벌기 위해 거짓으로 서류를 꾸며 클라이언트의 승소를 이끈다는가 하는 행위는 합법적인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혜택을 받기 위해 일부러 일을 하지 않는다든가 거짓말을 해서 정부의 혜택을 받는다든가 세금을 속여서 내지 않는 것도 도둑질이다. 교수가 사례비를 받고도 학생을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학생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것 등도 도둑질이다.

직장인이 일하는 시간에 개인적인 목적으로 인터넷 서핑을 한다든가 컴퓨터 게임을 한다면 이는 절도행위와 같다. 세일즈맨이 제품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는 것도 남의 재산을 훔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제품이라고 광고해놓고선 이 제품을 수리하기 위한 워런티를 파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노동착취를 하는 일 식당에서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의 서브를 받은 후에 제대로 팁을 놓지 않는 것 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귀중한 노동력을 훔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도박은 다른 사람의 손해를 통해 내가 이익을 얻고 기쁨을 누리는 도둑질이다.

이 땅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을 어기면서 살고 있다. 도둑질로 경찰에 붙잡혀 가지 않았을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8계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도둑 사이에 매달린 예수님은 도둑이 마음을 열기만 하면 당장 그들을 구원해주실 마음을 가지셨다.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한 강도가 구원을 원하자 예수님은 낙원을 약속하셨다.

도둑과 같은 신세가 되었던 예수님이 도둑을 구원하셨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도둑을 위해 죽으셨고 도둑 심보를 가진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도둑이 아닐 수 있지만 청지기직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서는 강도라고 할 수 있다. 칼만 들지 않았지 강도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다. 8계명을 어긴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께 의지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은 그의 보상(atonement)으로 가능했다. 강도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죄는 보상된 것이다. Atonement(어톤먼트)는 at-one-ment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가 됨'으로 보상이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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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osaic: a tribute to flickr portraits
world mosaic: a tribute to flickr portraits by pardeshi 저작자 표시

Strength in Weakness (약함 중에 강함 주시네)

And He said to me,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for My strength is made perfect in weakness." Therefore most gladly I will rather boast in my infirmities, that the power of Christ may rest upon me. Therefore I take pleasure in infirmities, in reproaches, in needs, in persecutions, in distresses, for Christ's sake.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2 Corinthians 12:910 

그러나 주께서는 "은혜가 네게 족하다.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29-10)


Why does God allow hardship? Why does God allow illness? Why does God allow tragedy? We can go on and on asking why, but we can't always answer these questions. Yet listen to what the apostle Paul said as he explains why it was allowed in his life in particular:

왜 하나님은 어려움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병을 허락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비극을 허락하실까요? 우리는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변을 항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왜 그의 인생에 어려움이 생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And lest I should be exalted above measure by the abundance of the revelations, a thorn in the flesh was given to me, a messenger of Satan to buffet me, lest I be exalted above measure. Concerning this thing I pleaded with the Lord three times that it might depart from me. (2 Corinthians 12:78)

내가 받은 여러 가지 엄청난 계시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내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고린도후서 127-8)


We don't know what Paul's "thorn in the flesh" was. Most commentators believe it was some kind of physical disability that he probably acquired after one of his multiple beatings or stonings. Whatever it was, the devil wanted to use it to get Paul down. And it worked. Paul got down on his knees and called on God. The devil wanted to drive Paul away from God, but instead the apostle clung to Him that much tighter.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몸의 가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어떤 주석가는 신체적인 장애라고 말합니다. 그가 전도활동을 하면서 채찍에 맞고 돌에 맞은 후유증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엇이었던 간에, 마귀는 바울이 넘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적중했습니다. 실제 바울은 무릎을 꿇며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마귀는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졌습니다.

When we go through suffering and hardship, it can be so difficult at times. I have never had a more difficult time in my life than the past 19 months. Yet the fellowship I have had with God has never been sweeter. I have never been more dependent on Him. There are times I don't think I can handle it, and then God gives me the strength that I need. And I have learned things that I would not have learned anywhere else. I don't know the "why" of it all, but I trust God, cling to God, and rely on God.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을 통과할 때, 때로는 너무 힘듭니다. 저는 지난 19개월 동안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음)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고 이전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다루기 힘든 일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인생에서 배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여전히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의지합니다

Are you facing hardship and suffering today? Pour out your heart to God. He is trustworthy.

오늘 여러분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온맘으로 의지하십시오. 그는 믿을만한 분입니다. [그렉 로리]

*
그렉 로리 목사에 대한 소개문
http://w1.hompy.com/hope888/%EC%B2%99%20%EC%8A%A4%EB%AF%B8%EC%8A%A4%EB%AA%A9%EC%82%AC.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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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종교의 자유가 억압되는 톱10 나라에는 북한도 있습니다. 북한이 1위입니다. 월드 워치 리스트에 따르면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나라 톱10은 다음과 같습니다.

1. North Korea
2. Iran
3. Saudi Arabia
4. Somalia
5. Maldives
6. Afghanistan
7. Yemen
8. Mauritania
9. Laos
10.Uzbekistan

http://members.opendoorsusa.org/site/PageNavigator/Petition_to_Obama_Appoint_Ambassador_Religious_Freedom

위 주소로 가셔서 청원서에 서명하시면 오픈 도어 USA라는 단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많은 사람이 종교의 자유를 원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청원하게 됩니다. 북한 동포의 종교 자유를 위해 많은 한국인이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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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rayer.cgntv.net/prayer2009/sub.asp?gubun=02&cnum=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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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TI-EARTHQUAKE

최근 지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티에서 선교 활동하고 있는 Living Hope Ministry가 있습니다. 이 선교 단체는 아이티에서 학교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헌금을 하시면 다음과 같은 일에 쓰일 수 있다고 합니다.

Financial contributions are being accepted for earthquake relief and will be used for purchasing food and supplies in Haiti for both the mission and for helping the local community. Contributions will also be used for building repairs

작은 액수라도 기부 또는 헌금을 부탁드립니다. 신용카드로 지원이 가능합니다. [밝은터]

http://www.livinghopehaiti.org/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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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eeds.harvest.org/JeffLasseigne (그렉 로리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 강의/설교는 Jeff Lasseigne)

다른 설교 및 강의

http://www.harvest.org/church/index.php/10/47/7/20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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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9일자 미주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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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old the Tree of Life
Behold the Tree of Life by moyerva34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신명기 6장 말씀을 적은 태투]


기독교 성서 신명기(Deuteronomy) 큐티를 하면서 대중문화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의견, 조언, 코멘트 등을 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왜 십계명을 주셨을까?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특별히 주신 것은 아닌가?

십계명을 주신 이유를 생각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온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도록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다보면 그의 사랑, 세심하심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는 분이 나에게 유품을 남기고 갔다면 그 유품 자체보다는 그의 사랑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다. 유품만 기억한다면 남기고 간 이의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특별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 자체를 너무 중시해 나중에는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선택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해집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십계명보다 더 위대한 그 어느 율법보다도 더 완벽한 선물(예수)을 주셨지만 이스라엘 민족 대부분은 이를 인식하지 않았고 인식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더더욱 매달렸습니다.

물론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면 낮은 사랑이겠죠. 율법은 특정 민족에 속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수님은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에 너무 집착하면 하나님 사랑보다는 인간의 도덕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질서유지와 하나님의 민족에 대한 첫 사랑 표현의 흔적으로 인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가 신성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멀리 있는 하나님의 이메일 러브레터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직접 편지를 들고 수신자를 찾는 택배사랑입니다. 둘 다 소중하죠. 둘 다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귀한 정도가 예수님이 더 커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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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311절부터 13절을 읽으면서 커텐이 내려질 우리의 행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유럽의 어떤 나라 시민들은 커텐이 없는 집에서 산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안에서의 삶을 이웃들에게 보여주면서 산다고 합니다. 솔직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담과 커텐을 현대 건물 구조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것이 보여지지 않는 삶을 살아야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것을 잘못됐다고 수는 없은 것입니다. 그러나 커텐이 내려질 우리의 행동이 달라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어둠의 행실을 벗지 못한(로마서 1312)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커텐이 열어젖혀 있을 우리는 그럴싸하게 행동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의 모습을 숨길 있습니다. 불이 켜지면 어둠 속에서 했던 일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있습니다.
 

Art Nouveau
Art Nouveau by Gabriela Camerotti 저작자 표시비영리

커텐이 닫힌 후에 우리가 가족에게 하는 행동과 커텐이 젖혀진 후에 행동이 다르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의 행실을 벗지 못한 ,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천사처럼 행동하다가 불어 꺼지고 커텐이 가리워지면 온갖 욕심과 분노와 욕정을 불사른다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의 자식들입니다.

빛의 자녀는 커텐이 젖혀지든 내려지든 24시간 빛의 자녀입니다. 빛의 자녀는 함부로 행동하고 함부로 말할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나 불이 꺼지면, 커텐이 닫히면 빛이 사라진다고 착각을 하고 삽니다.

저를 생각합니다. 아무도 나를 보는 이가 없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여전히 어둠의 자식처럼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사람들이 있을 때보다 열심히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열심히 찬양하지 않고 착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불이 꺼지면 나는 빛의 자녀로 행동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커텐이 가리워지면 마음대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커텐이 가리워져도 어둠이 와도 나는 빛의 자녀처럼 살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13절에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비춰지는 빛이 제대로 뻗어나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활동을 끝낸 돌아올 돌아온 후에 커텐을 치고 나서도 나는 빛의 자녀처럼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어둠과 커텐  안에서도 입고 싶습니다 (로마서 1314).


A light in the dark...
A light in the dark... by carf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인터넷을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누구를 등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빛의 자녀가 어둠의 자식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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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가 문명의 이기로 자리 잡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컴퓨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컴퓨터로 우편 수신을 하는 시대. 그리고 컴퓨터 문화가 곧 우리 삶속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컴퓨터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특히 기독 사회에 가져다주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기자는 21일 폐막된 세계 최대 컴퓨터쇼인 컴덱스 ‘97에 참여했다. 그리고 컴퓨터 문화가 크리스천 문화와 기독교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취재했다.
12년 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취재: 박병기
취재 장소: 라스베가스(네바다주)
취재일자: 1997년 봄
기사 게재: 크리스천 헤럴드 USA 


 “The PC empowers everyone in the world to publish their ideas, opinions, and dreams of changing the world"


 ‘컴퓨터 황제’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이 이번 컴덱스 ‘97 행사의 기조연설에서 거론 했던 내용 중의 일부다.


 게이츠 회장은 자신이 컴퓨터를 좋아하는 10가지 이유 중 한 가지로 위의 내용을 꼽았다. 일단 무슨 뜻인가를 알아보자.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PC는 지구촌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실현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말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 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표현된 것은 물론 아니다.


 크리스천은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이 무엇인지가 분명하다. 게이츠의 꿈을 복음 전파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하나님이 계획하는 컴퓨터 미션?


 기자는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들이 택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를 행사장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창조주는 게이츠를 들어 쓰시고 계시지는 않을까? 기독교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게이츠 회장이 다리를 놓아 주고 최후에는 믿음의 자녀들이 그것을 도구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닐까? 세상에 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만들어졌다고 성경은 명시하고 있는데 그럼 컴퓨터를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게이츠 회장은 연설에서 PC를 사랑하는 이유 10가지중 ‘전 세계 언어를 컴퓨터가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섯 번째로 꼽았다.


 인간의 죄로 인해 공통 언어가 없어지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눠짐에 따라 우리는 선교적인 비전을 이루기 위해 언어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다.


 컴퓨터 시대인 오늘날에는 이 같은 문제도 조금씩 해결 되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각국 언어도 쉽게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둘러본 후 기자는 ‘들고 다니는 컴퓨터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손바닥만한 컴퓨터도 이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만날 때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손바닥만한 컴퓨터는 통역역할을 수행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지 선교’시 언어 습득을 위해 10년을 보내는 일은 생략되고 곧바로 복음 전파를 할 수 있게 된다.

 

시공을 초월한 선교

 기자는 전시장에서 우연히 인터넷 샤퍼(Internet Shopper)라는 회사의 부스에 들렸다. 작은 영국 회사였지만 그들의 인터넷을 통한 업무 수행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오피스라는 공간 개념이 없이 모두가 집에서 근무를 하고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 처리하는 이 회사는 그 어느 때보다 매상이 높아질 뿐 아니라 비용절감 효과를 경험했다고 한다.


 기자는 물론 교회의 모든 일들을 인터넷 샤퍼사처럼 인터넷을 통해 하자고 주장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예배, 기도, 찬양 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면 부분적으로 선교 사역에 큰 도움이 된다.


 실제적인 한 예를 들어본다. 캘리포니아 주 LA근교에 있는 한 선교 단체를 보면 인터넷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사람들(Partners for Africa)이라는 선교모임은 공무원, 작가, 대학원생(박사학위 논문 준비중)등 3명의 주요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담당하는 선교사를 지원하는 이 모임은 인터넷이 없다면 꾸려나가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의 의사전달과 업무 수행은 모두 E-메일을 통해서다. 개인 스케쥴이 워낙 달라 미팅이나 전화로 서로를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E-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예를 들어, A가 한국어 편지를 만들어 B에게 E-메일을 보내면 B는 이를 인쇄한다. B는 한국어 편지를 영문으로 번역해 C에게 E-메일을 보낸다. C는 영문 편지를 검토한 후 다시 E-메일로 B에게 보내면 B는 이를 인쇄해 선교 후원자들에게 발송을 한다. 만약 이들이 서로 만나야만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선교모임은 애초에 구성되지도 못했다.

 

컴퓨터 문명을 선교의 툴로...


 위의 내용은 단편적이 예에 지나지 않는다. 로컬 전화요금으로 전 세계 어디에나 전화를 걸수 있는 ‘인터넷 폰’ ,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팩스나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컴퓨터’, 사진 현상소를 갈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와 프린팅 시스템’, 두꺼운 성경책 대신 얇은 CD에 들어있는 성경 등은 우리의 선교 대상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목회자들의 훌륭한 설교가 지구촌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메아리쳐질 수 있는 기술이 도래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사진 설명: 

전 NBA스타 카림 압둘 자바. 압둘 자바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설명한다. 그는 이슬람교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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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ee
    2009/06/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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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그보다 큰일이 이런것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믿는것이 기본이 되겠구요 ㅎ
    • 밝은터
      2009/06/23 20:5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잘 이해가...
  2. tree
    2009/06/23 23: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툴을 잘 이용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일을 이룰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14:12)
    • 2009/06/24 00: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네...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로마서 1220절에 보면 머리 위에다 숯불을 쌓는 셈이 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머리 위에다 숯불을 쌓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행위라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 풍습에는 머리에 숯불을 담은 통을 지고 다니는 것은 회개를 표시하는 행위였는데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성경 주석가들은 설명합니다.

맨 머리에 숯불을 붓는 게 아니라 숯불을 담는 통(왼쪽 사진)이 있고 이 통 위에 숯불을 부어주는 것이 원수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는 다는 게 사도 바울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숯불을 부어주는 것은 선의라는 뜻입니다. 숯불을 받은 사람은 실질적으로는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고 상징적으로는 은혜를 경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수에게 숯불을 붓는 것에 대한 한국적인 전통이나 상황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우면 더 잘해준다는 의미죠.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더 잘해주는 게 현명한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좋은 결과가 있을 듯합니다.

첫째는 숯불을 받은 원수 또는 미운 자식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게 은혜의 행동을 한 사람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입니다. 원수를 원수로 받아들이면 손해보는 쪽은 원수가 아니라 그를 원수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미운 자식을 미워하기만 하면 손해보는 쪽은 부모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쟁이 들끓는 이유는 원수를 원수 취급하고 미운 자식에게 비난만 퍼붓기 때문입니다. 달래면서 참회할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요즘 북한 핵무기가 세계적인 관심사인데, 그렇다면 미운 자식인 북한에 떡을 더 주는 게 현명한 것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 숯불을 붓는 게 현명한 일인가 적용을 해봅니다.

북한에 떡을 실어 날랐던 분들은 어쩌면 이 성경 내용을 보며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 떡만 줬으면 좋았을텐데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자금을 준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핵미사일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최악의 무기입니다. 원수와 화평하기 위해 인류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저 북한 주민을 위해 음식을 갖다주고 추운 사람이 있으면 따뜻하게 해주고 했어야 하는데 달러를 갖다줬으니 원수는 엉뚱한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붓는 것과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내용을 읽으며 우리는 화평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화평을 불러온다면 그것은 정당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마치 원수의 머리 위에 통이 없는데 뜨거운 숯불을 붓는 것, 미운 자식에게 떡 대신 엄청난 유산을 상속하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North Korean Soldiers March in Formation in Panmunjom

로마서 12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저는 어떤 적용을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수 또는 불편한 사람과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리수를 두고 화평을 도모했더니 오히려 엄청난 핵폭탄을 맞게 된다면 그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수준에 맞게
, 내 그릇 크기에 맞게 화평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13절에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라고 나오는데 손님 대접하기도 내 수준과 상황에 맞게 해야 화평이 있는 것이고 기쁨이 있는 것이지 그 말씀을 이행하겠다고 무리수를 두면 엄청난 부정적인 결과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18절에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내 능력만큼해야 한다는 의미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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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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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감합니다.
    달러를 줄 것이 아니라 떡을 주어야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0절을 은혜를 베푼다는 뜻인데 저주의 말로 오해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 2009/06/22 22: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그렇군요. 오해하는 분들이 계시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아래 글 중에 자살하면 천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조만간 그것에 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꿈속을 헤매이는 자들이 많다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도 있고 전혀 교육의 기회를 못 가진 사람들 중에도 이런 자들이 수두룩하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제 손으로 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씨의 죽음은 “사망”이 아니고 “서거”라고 굳이 고집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나라의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노무현 씨의 죽음은 사망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죽어 없어진 것”(사망)이 아니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서거)입니까. 도대체 “갔다”면 어떤 곳으로 갔다고 짐작하는 것입니까.

불교는 극락정토와 지옥 두 곳이 있다 하고 기독교는 천국이 있고 연옥 또는 지옥이 있다고 하는데 내세에서 어느 쪽엘 갔을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까. 문화 민족다웁게 좀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나의 좁은 소견으로는, 어느 종교도 하늘이 주신 목숨을 제 손으로 끊어버린 사람을 극락이나 천국에서 환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기 목숨이 자기만의 것이 아닌데 마치 자기만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끊어 버린다는 것은 천국에서도 극락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도 이 백성은 그저 한숨으로 지켜보았을 뿐, 그 이상의 대접은 못했습니다. 대학입시에 낙방한 학생들의 자살, 잘 나가던 탤런트들의 자살도 잘못이고,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이나 부산광역시 안상영 사장의 자살도 잘못이라면 노무현 씨의 자살도 잘못아닙니까.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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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중앙일보 2009 610일자 종교 6면에 실린 블로그 운영자가 칼럼입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 사이즈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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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저는 그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면 사회가 많이 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했습니다. 그의 무책임한 언동은 한국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그가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일은 유감스러웠습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측은하게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후 온갖 비난의 화살을 다 맞는 것을 보면서 젊은 전직 대통령이 왠지 안쓰러웠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 시골로 내려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그를 방송에서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노무현 /
출생 1946년 8월 6일
신체
팬카페 노무현을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 ( 노사모 )
상세보기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했든, 실족사했든 우리 민족은 그의 삶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과 그의 정치 그리고 재임 기간을 통해 우리 민족을 보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착한 민족이면서도 점점 가벼운 민족으로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민족이 가볍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무르익기 전에 대통령이 됐습니다. 가벼운 결정이 그런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입도 가벼웠습니다. 그는 대통령답지 않은 언사로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정치인들도 참 가벼웠습니다. 정치를 잘 못한다고 탄핵으로 그를 몰고가는 어린아이 정치로 가볍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권좌에서 내려온 후 그는 검찰에 의해 가볍게 처리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성역이 없다지만 그렇게 쉽게 처리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반응도 너무 가볍습니다. 잘 죽었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요. 한 사람의 죽음은 이렇게 쉽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국부였지 않습니까.

나와 이념이 맞지 않고 나에게 이득을 주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싸다는 가볍고도 가벼운 생각. 심히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죽은 자에게는 좋았던 추억을 말해주는 게 예의인 것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평가는 있겠죠. 그것은 역사가들의 몫입니다.

국민의 몫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 그가 잘못한 것만 있겠습니까? 잘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 좋겠습니다. 그의 죽음마저도 이념 싸움의 장을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애도의 물결'이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뜨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자살? 실족사'라는 헤드라인은 많이 가볍습니다. 정말 가볍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정말 슬픕니다.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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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무현

    2009/05/22 20:21
    삭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높은 이상 나라를 일으키려했던 영웅의 이상을 가졌던 그 소녀의 심장으로 눈물을 흘리고 연약한 마음은 늘 아픔을 감추며 살아왔었다 거친 세상의 파도는 그의 이상의 바위를 깎아내렸고 파도의 담긴 세상의 짠 소금은 그의 심장을 녹게 하였다 그의 이상도 세상앞에 아무것도 아님을 그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마는 구나 소녀처럼 연약했기에 아름다웠던 그의 마음은 소녀처럼 순박했기에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상에 널려있는 둥근 조약돌이라..
  2.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2009/05/22 20:22
    삭제
      방금 어머니가 올라와서 하시는 말씀이 노무현이 자살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밑에 내려가서 TV를 보고 오니 방금 사망했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믿기지가 않는 일이다. 한 나라에 대통령까지 지냈던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생각해 보면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섬세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델리케이트 함은 대통령 재직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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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2 20:2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늘 아침 이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부 생각 없는 어린 네티즌들의 '고인드립'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듭니다...

    노 전 대통령의 소극적 지지자로서 답답한 마음에 추모시를 하나 적어 트랙백 남깁니다
  2. tree
    2009/05/23 06: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너무 슬퍼서 죽고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 분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않됩니다. 의도하지 않으셨겠지만 큰것을 남기고 가신 그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는

내가 정말 잘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합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단어는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당신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당신에게 이것을 부탁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우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단어는

“나”라고 합니다.

  글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여섯 단어를 실천하고 살아간다면,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산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땅이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어제까지 나만 생각하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나만큼 다른 사람도 귀중하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남을 중시하는 것은 훈련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이기적인 우리를 이타적인 우리로 만드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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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념
    2009/05/15 22: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를 위해서 짊어지는 부담을 기뻐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희생을 자원하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어령 교수가 중앙일보에
'한국인 이야기'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 오늘은 그의 인터뷰 내용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대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하듯이 글 쓰는 사람은 감동을 먹고 삽니다. 저에게 독자란 함께 공감을 나누는 동반자지요. ‘감동’을 한자로 써보세요. 사람은 느껴야 () 움직()입니다. 그 에너지가 부족해서 저는 언제나 배가 고프고 그래서 또 이렇게 글을 씁니다. [관련 글]


이어령 / 문학평론가
출생 1934년 1월 15일
신체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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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들은 언제 감동을 느낄까. 댓글이 올라오고(악플은 제외, 건전한 비평은 OK) 트랙백이 날아오고 추천이 눌려질 때 감동을 느낀다. 특별히 댓글과 트랙백은 블로거가 느끼고 움직이는(感動) 원동력이 된다. 댓글과 트랙백을 남긴 블로거의 블로그에 찾아가 감사의 댓글을 달 때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블로그를 통한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 블로그를 개설한 후에 나는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것은 그들과 소통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대화하기 힘든 바쁜 시간 중에 온라인상으로라도 대화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전혀 몰랐던 분들과 대화하는 것 역시 기쁨이 됐다. 나를 몰랐던 분인데 찾아들어와 대화를 시작하고 그분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것 역시 대단한 기쁨이었다. 이 블로그에서는 모르는 분과 대화하는 기쁨을 누리진 못했지만 다른 블로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쁘고 기쁘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인()터넷은 인()터넷이 된다. 블로그는 바로 그 에너지를 얻는 곳이다. 광고를 통해 버는 돈은 약간의 보너스일 뿐이다. 이어령 교수는 언제나 배가 고프고 그래서 또 이렇게 글을 쓴다고 했다. 블로거들은 바로 그 감동(感動)에 배가 고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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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e tree
    2009/05/12 16: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어제 저도 신문에서 이어령님의 글을 읽었었는데요...감이 동했습니다. "이미 알고있는 냇물에 고기를 낚는다"는 말이 가장 남았습니다.예전에 아이들이 보는 만화의 몬스터를 가지고 다니시며 외우셨는데...다시 생각났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것을 먼저 발견하고 문제점도 발견하고...자신의 생각을 가두지 않고 고민하고 또 제시하는 모습이 선생님스럽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2009/05/13 13:3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나눔에 감사드립니다.
  2. 양념
    2009/05/12 20: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인(人)터넷,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람의 정이 오가는 인(人)터넷 이길 바랍니다.
    • 2009/05/13 13:3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인(認)터넷입니다. 인정할 인.
  3. 2009/05/13 04: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댓글 달고 댓글에 대해 답글을 달때가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한명 한명 모르는 블로거님과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제 블로그 운영 목표입니다.
    • 2009/05/13 09:4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공감하는 분이 있어서 더욱 좋네요. 화이팅!

4복음서 대조표

2009/05/06 12:41
4복음서를 대조하는 웹사이트인데 큰 도움이 됩니다. 복음서에서 어떤 사건을 기록할 때 내용이 약간씩 다릅니다. 이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볼 때 생기는 해석적 위험성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문자와 의미 두 가지를 지혜를 구하며 성경을 읽으면 좋습니다.

http://kcm.co.kr/BIBLE01/Evan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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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로마서 10

고백과 믿음=구원(?)

로마서 10장에는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당시 사회를 생각해 봅니다. 구원이 간단해 보이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를 고백함으로 체포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함이라는 놀라운 선택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요구했을 때 이를 거절하는 것,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이 예수를 부인하면 풀어해주겠다고 했을 때 그럴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바로 예수를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리 스트로벨 (두란노, 2002년)
상세보기

정보 사회에서의 믿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입으로 고백하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한다고 한들 법적으로 제재받지 않습니다. 후기 산업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가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삽니다. 정말 원하는 어떤 정보든 얻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정보도 널려 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인류학적으로 분석된 자료가 인터넷에 풍성합니다.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선택 중에 하나를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나오는 정보에서 발견하는 예수

지식 사회를 거친 우리가 그 정보를 마음 속으로 잡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인류학적으로, 고고학적으로도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그 정보를 잡은 사람이 바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 정보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고, 마음에 너무나 진하게 믿겨지는 것이 바로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원시 사회나 농경 사회에서는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그 사회에서도 전해졌습니다. 제한된 정보이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정보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선교인 것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이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못 들은 이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안에 믿음이 형성이 될 수 없는 여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이자 복음 전도자들이 잘 못 전해서 믿음이 형성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 사회, 산업사회,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정보는 충분합니다. 그 정보를 듣는 자가 잡느냐, 잡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쉬운 것 같은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어령 선생 같은 지식인이 예수 복음을 어떻게 잡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이어령 / 문학평론가
출생 193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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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에 접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신문을 보다가,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TV를 보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책을 읽다가 정보를 접합니다. 이 수많은 정보에서 예수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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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러다임 시프트를 갈망하는 블로거의 詩

    2009/05/01 10:17
    삭제
    올바른 댓글 문화란 무엇일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4월부터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생각한 것이다. 과연 올바른 댓글 문화는 무엇일까? 댓글을 왜 다는 것일까? 댓글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가장 문제 있는 댓글은 역시 악플이다. 글 내용과 상관 없이 글 쓴이와 글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비방..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Joe Yang
    2009/05/01 08: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 글을 읽는 중에 '놀라운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믿음'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나오리라고 기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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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 있는 예수(Christ in Culture)를 주관점으로 묵상 내용과 생각을 나눕니다. Since 2006/01 (http://blog.daum.net/bbjjp) by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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