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미국 이민자로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언론인(당시 80)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3시간의 운전 길 내내 우리는 한국 정치, 미국 사회, 미국 이민사회 등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속에 남는 내용은 그의 자녀 이야기였다. 그 원로 언론인은 세 자녀를 키웠는데 두 자녀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해 변호사가 됐다고 소개했다. 하버드대 출신 자녀를 둔 아버지의 자랑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들어보니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버드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첫째 자녀는 "이 일이 천직이 아닌 것 같다"며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50세가 넘은 지금까지 LA 인근 샌퍼난도 밸리라는 지역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아드님이 교사직에 만족합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그는 "물론입니다"라고 답했다.

둘째 딸의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역시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큰 회사의 재정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맹활약하던 딸이 아기를 낳은 후 전업주부가 됐다는 것이다.

이유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의 사랑이지 돈이 아니라는 가치론 때문이다. 허름한 소파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딸의 모습을 보며 그 원로 언론인은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속이 많이 상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의 자녀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 "성공스토리를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팔을 살짝 만졌다. 기쁨의 표현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그렇게 애써서 가르쳤는데 아깝겠네요…"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담'은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높은 가치를 두고 기뻐하는 삶을 담은 그릇을 소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사격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후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던 강초현(당시 23세 고려대)의 원래 꿈은 체육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트리플A에서 좋은 피칭을 했고 2009년 현재 다저스 산하 트리플A에서 활동 중인 최향남(야구 선수)을 인터뷰한 기억이 있는데 그는 "은퇴 후 계획은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야구에 도전했던 최익성(위 사진)이라는 선수도 나와의 만남에서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것 자체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큰 꿈을 가지라'고 우리 귀에 확성기를 대고 말을 한다. 큰 꿈을 갖는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소박한 꿈도 큰 꿈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우리는 잊고 살고 있다. 하버드대를 나왔든 고졸이든 중졸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남을 해하지 않고 사는 삶 그것이 소박한 삶이 아닐까. 어찌보면 예수님도 제자들도 소박하게 살다가 천국으로 가셨다. 사도 바울이 화려한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만 소박한 삶의 대표주자였다. 그래서 소박한 삶은 위대하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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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e Bryant 2004 All-Star game
Kobe Bryant 2004 All-Star game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학생 시절 이야기다.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이 세상에 악(evil)을 만든 신을 믿는 것은 미신 행위"라는 교수의 설명에 아인슈타인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차가운 상태(cold)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수는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물리학적으로 차가운 상태란 없습니다. 다만 열(heat)이 없는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차가움(cold)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입니다." 교수는 할 말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어둠(darkness)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수는 "물론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어둠이란 없습니다. 어둠은 물리학적으로 빛(light)이 완전히 없는 상태입니다."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결론을 냈다. "신이 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악은 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선과 믿음이 없는 상태를 쉽게 표현하기 위해 ''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교수는 고개를 숙였다.

아인슈타인의 기존의 상식을 깨는 독특한 발상은 '상대성 이론'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 이야기는 아인슈타인의 학생 시절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비 동료의 얼어버린 손(cold hand)과 코비의 어시스트(heat)를 비교할 수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 코비 동료의 손은 얼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손이 얼었던 것이 아니라 열(어시스트)이 부족했었다고 할 수 있다. 동료의 얼어붙은 손은 열로만 녹일 수 있었다. 코비가 강하게 발열(Generation of Heat)을 하자 동료의 손은 녹았고 레이커스호는 순항했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비는 과거에도 발열을 시도했지만 동료가 얼은 손을 내밀지 않거나(즉 슛을 쏘려고 하지 않거나) 발열량이 부족해 계속 차가운 상태를 유지했던 적도 있었다. 레이커스는 2009년 현재 코비가 적극적으로 충분한 발열량(어시스트)을 내고 있고 그의 동료도 차가웠던 손을 자발적으로 내밀어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차가움이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기억하면서 레이커스의 상황을 보니 좀 더 이해가 쉬웠다.

NBA에서 슛이 정확하지 않은 선수는 극히 드물다. 다만 열(어시스트)을 받지 못해 손이 얼어붙어 있을 뿐이다. 선수들의 얼어붙은 손과 마음을 녹이는 대표적인 선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매직 존슨( LA 레이커스)이다. 그의 발열로 레이커스 팬들은 80년대에 전설적인 '쇼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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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지가 선정한 2009년 미국 내 기독교 관련 소식 톱10 뉴스에 관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2010/january/2.9.html
McCain And Obama Attend Campaign Forum At California Mega-Church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2009년 12월31일 온라인 독자들에게 "목회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교회의 적자상황을 설명하게 됐다"며 90만 달러의 적자 내용을 소개했다. 미국 경제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교계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새들백교회에서 대선 후보가 악수를 하고 있는 장면. 중앙이 워렌 목사.

1. 경제 위기(The Great Recession)로 인해 선교비 급감하고 각종 기독교 단체에서 직원을 해고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월드비전, 빌리 그레이엄 복음협회, 포커스 온 더 패밀리, 애즈베리 신학교,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등 기독교 계열 단체가 상당수의 직원을 해고했다.

2. 정통 앵글리칸 교회가 북미주 협의회를 결성했다. 이는 에피스코팔 교회가 동성애자 목회자를 받아들임에 따른 결정이었다. 또한 복음주의 루터란 교회 연합회(ELCA)도 부분적으로 동성애자 목회자를 인정하면서 보수적인 루터란들과의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했다. 감리교단과 장로교단은 아직까지 동성애 목회자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상태다.

3. 종교 단체가 의료 개혁에 딴지를 걸어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과 공화당 의원들은 납세자 지원 낙태를 반대해 이 안이 의료 개혁에 포함되지 않도록 했다. 이는 가톨릭 사제들의 강력한 로비 덕분이었다.

4. 오바마 정부는 줄기 세포 연구에 연방 지원금이 차출되도록 허용했다.

5. 8월에 있었던 고지라 폭동으로 기독교인에 테러가 자행됐다. 이는 파키스탄의 신성모독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6. 신종 플루가 전 세계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교회는 예배 일정을 조정하는 등 신종 플루에 대처하는 모습이었다.

7. 대형 교회의 브랜치화, 캠퍼스화가 활발히 진행됐다.

8. 존더밴 출판사의 현대 NIV(약자 TNIV) 성경의 발매를 중단했다. 이 성경에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평등 화법 등의 내용이 있어 화제가 됐다. 존더밴은 문제가 된 내용을 수정한 새로운 개정판을 2011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9. 가자(Gaza) 지역의 전쟁은 팔레스타인 크리스천과 메시아적 유대인들의 화해를 막았다.

10. 히스패닉 복음주의 리더들은 2010년 인구 통계 조사를 보이코트하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 인구 조사가 이민개혁안을 위해 사용될 것을 경고했다. 반면 미국 복음주의 전국 연합은 2010년 인구 통계 조사에 찬성했다. [정리=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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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awal Bhutto Speaks At Press Conference

스포츠 스타들은 다른 분야의 스타 못지않게 이미지가 중요하다. 좋은 실력에 좋은 이미지까지 보태어지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천만 장자가 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미지는 주로 언론을 통해 만들어진다. 팬들 입장에서는 어떤 렌즈를 통해 선수들을 보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렌즈는 곧 언론이다.

뉴욕을 예로 들어보자. 뉴욕 스포츠 팀들과 선수들은 주로 뉴욕 타임스라는 초대형 일간지의 편집국장과 일선 기자들이 가진 렌즈를 통해 이미지가 전달된다. 독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선수들의 이미지를 복사한다. 개인적으로 팀과 선수를 접할 기회가 있어서 나만의 렌즈로 그들의 이미지를 봤다면 다른 시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이미지일 수 있고 더 나쁜 이미지일 수 있다. 물론 비슷할 수도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미 주류 사회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모 신문 구독을 중단했다. 이유는 그들의 렌즈로 세상을 보다 보니 ‘해석 방법’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이덴티티’가 변색되는 느낌이었다. 마이너리티를 은근히 무시하는 그들의 렌즈를 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고 그 신문을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그 신문에서 운영하는 웹진에서 기사를 검색해 읽는다.

어떤 분은 ‘우리가 미국에 동화되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강조하지만 아직은 미국이 아시안(영어를 아무리 잘해도)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숙한 단계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의 독특하고 깨끗한 렌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렌즈를 끼느냐에 따라 우리의 눈길과 관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내린 중대한 개인적인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생부를 만난 토비 도슨은 몇 년 전 밝은터(이 블로그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찾는 입양아’로만 비치는 것이 싫고 부담스럽고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의 렌즈는 그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토비의 가족과의 만남을 상세히 소개한 후에 렌즈의 각도를 틀어서 한국의 입양아 ‘수출’, 미아에 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다각화시켜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수년 전 수퍼보울 MVP 하인스 워드로 인해 한국의 혼혈인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바뀌었던 것처럼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확산했으면 한다. 입양아에 대한 관심은 결국 미혼모의 사회 문제와 문란해진 성문화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언론이 렌즈의 방향을 바꿀 때 그 렌즈를 그대로 따라가는 독자나 시청자 및 청취자는 새로운 방향에 관심을 두게 되어 있다. 하인스 워드의 한국 방문 이후 한국의 모 방송국에서는 혼혈아의 이야기를 다룬 ‘깜근이 엄마’라는 특집극을 방영해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특정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수정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렌즈가 필요하다. 렌즈의 역할을 하는 언론, 철학, 종교가 있고 ‘이 중에서 어떤 렌즈를 가진 언론(또는 철학, 종교)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있는 시민들이 있다. 대다수가 어떤 렌즈를 끼기로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도 바뀌고 세상도 달라진다. , 말하다 보니 렌즈 닦을 시간이다. 렌즈가 더럽네….[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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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CA PATRICK

자동차 분야는 아마도 내가 가장 관심이 없는 분야일 것이다. 지인들이 "무슨 차 타고 다니냐?"고 질문을 하면 당장 답변을 못할 정도다. '내가 무슨 차를 몰고 다니지?'라고 3초 정도 생각하고 난 후에야 답을 한다. 어떤 때는 기억을 해내지 못해 그냥 "회사는 OOO인데 모델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한다. 그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없다. 또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운전이다. 운전하는 게 왜 이렇게 싫은지….

그런데 몇 년 전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동차 경주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나스카(NASCA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지금은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전에는 TV를 봐도 '자동차 타고 빨리 운전하면 이기는 지루한 경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당시에는 다른 시각으로 보니 꽤 볼만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스카에 대한 공부를 하고 경기를 계속 보다 보니 풋볼 이상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만드는 경기라고 할까.

몇 년 전 '나스카의 수퍼 보울'인 데이토나 500을 볼 기회가 있었다. 얼마나 흥분되고 가슴이 뛰는지 내내 탄성을 질렀다. 경기 중간에 접촉 사고가 날 때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토니 스튜어트, 지미 존슨, 데일 언하트 주니어의 자동차가 사고로 더 이상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자 "저런~"이라는 걱정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자동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왜 나스카 경기에 이렇게 빠져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컨텍스트(context)'를 알고 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미국인들이 왜 이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어떤 선수가 유명한지 어떤 선수가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이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대회 우승자에 어떤 혜택이 있는지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왜 열광하는지 등등을 알고 보니 재미가 있었다.

다른 스포츠 종목 또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두 분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네트에 공 넣는 것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고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농구나 축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이런 분이 스포츠 경기를 보면 '네트에 공 넣기(농구 축구)' '땅 따먹기(풋볼)' '막대기에 공 맞추기(야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인생의 드라마'가 있다.

다른 분야도 컨텍스트(주변 상황)를 모르고 볼 때 마찬가지 해석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컨텍스트는 참으로 중요하다. 텍스트(text)만 보면 어이없는 말이지만 컨텍스트 안에서 본 텍스트는 적절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전에 나스카를 볼 때 컨텍스트는 무시하고 텍스트만 봤던 것 같다. 그러니 '자동차 운전을 빨리해서 이기는 지루한 경기'라고 10여 년 동안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독자 여러분에게 나스카를 좋아하시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깨달은 점이 있어서 나누고 싶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컨텍스트(성경 속의 상황과 현재 성경을 읽는 나와 이웃의 상황)를 알고 읽는 것이 살아 있는 성경 읽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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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9장에 보면 갈릴리에서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오실 왕은 평화의 왕이요, 영원한 아버지요, 강한 하나님이요, 놀라운 멘토라는 내용이 9장에 소개됩니다.

너무나 명백한 예수 탄생의 예언 부분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이미 기원전 750년 쯤에 예언이 됐던 것입니다. 97절에 보면 앞으로 태어난 그분은 영원한 평화와 공의와 정의를 가져올 분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모스서도 보면 하나님은 불의하게 돈을 버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화가 나 있으십니다. 가난한 자를 등쳐서 부를 챙기는 자들에 대한 화가 그들에게 미칠 것을 예언자 아모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아모스서 그리고 신명기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이요, 가난한 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요, 평화를 가져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유다 땅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땅은 공의와 정의가 없이 자유경제주의의 이념 아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깊어지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것이 사회주의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서 521절에 나는 너희의 종교 잔치를 싫어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돌보지 않은 채 드리는 제사는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모스 521-24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너희들 노래소리, 제사 지내는 것, 헌금 다 필요 없다.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98 / 미국)
출연 톰 행크스, 톰 시즈모어, 에드워드 번즈, 맷 데이먼
상세보기

성경 원어에 보면 공의라는 말은 어려움에 빠진 이를 건져내는 일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는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이 희생됩니까. 그렇지만 구해내려는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어려움에 빠진 인류, 어둠 속에 있는 인류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은 비효율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한 일입니다. 군림하며 모든 이를 회심케 한 게 아니라 희생하며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내신 것입니다.

이성주의 사회에서는 비효율은 바보짓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여기저기에 공의를 강조하시며 바보짓을 하길 원하십니다.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어려움에 빠진 이를 건져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더 높이 오르려고 하고 더 많이 챙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공의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면서 도움이 필요한 자를 그냥 지나친 자들이 효율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음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내것 챙길 것 다 챙기면서 공의를 이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의 희생과 손해가 있어야 공의가 실현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보이셨고 그것은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서입니다. 우주의 창조자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공의는 결국 사랑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면 손해를 보게 되고 손해보면서 어려움에 빠진 자를 건져내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자녀가 있는데 부모가 자기 목숨을 생각하겠습니까. 사랑하기에 수영을 못해도 물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장진영 / 국내배우
출생 1974년 6월 14일
신체
팬카페 장진영 공식 팬클럽 J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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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 씨의 남편이 손해를 보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곧 죽게될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그는 장진영 씨의 가족과 만나 모든 재산이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사랑과 공의는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손해를 감수함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와 아모스서가 씌어졌던 시점은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715년 사이인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가 기원전 750년 전쯤에 예언을 했고 기원전 715년까지 이사야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은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서 선지자로서 인정을 받는 자였고 아모스는 남부 유다에서 농부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의 예언 또는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아모스는 유다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했고 이사야는 남부 유다에 살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모스의 말은 아무래도 무시했겠죠. 오늘날도 치자면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유다 출신의 시골 농부가 갑자기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예언을 한다는 게 좀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서에 있는 이사야와 아모스를 읽으면서 재미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의가 땅에 떨어진 유다와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 맞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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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my fault

2009/12/27 11:39



미국에서 동네농구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 My fault(내 실수다)’라는 말이다. 자기가 잘못해 상대편에게 공을 넘겨줬다는 표현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했다. 대부분 ‘네 탓이야(Its your fault)’라고 하는 문화 속에서 있다가 이러한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우리의 뇌는 ‘남의 탓’을 찾는 데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건전한 비판 의식은 좋은 것이지만 ‘나는 잘못이 없다’는 이유를 찾고자 도가 지나치게 ‘남의 탓’을 하면 화목이 깨지게 되어 있다. 미국이 ‘남 탓’을 전혀 하지 않는 나라는 아니다. 미국도 LA 폭동 당시 모든 잘못을 한인 사회에 뒤집어씌우려고 시도했고 몇 년 전 조승희 사건이 터졌을 때도 굳이 ‘Seung Hui Cho’를 ‘Cho Seung Hui’로 사용하며 미국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려는 숨은 의도가 엿보였다. 또한 이 학생을 무조건 정신병자로 몰아서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순수한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승희야, 네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못해준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의 여학생 편지와 ‘한국인이 죄의식을 느낄 필요 없다’는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미국의 시민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니던 교회가 미국 교회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당시 미국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불운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의 책임입니다라고 한국인 교회 교인들에게 말을 해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남의 일이지만 ‘내 탓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을 둘러보게 되어 있다. 내 자녀들에게 내가 잘 못한 것은 없는지 이 아이들이 부모와 충분한 대화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네 탓이야’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까지의 삶과 똑같이 살게 될 것이다.

NBA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입 모양을 잘 보면 ‘마이 폴트(my fault)’라고 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친화력이 좋음을 알 수 있다. ‘마이 폴트’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팀 동료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니 안심해라’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동료를 위하는 마음인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화목케 하는 바람직한 일이다. ‘유어 폴트(Your fault)’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행복해 하지 않는다.

‘마이 폴트’라고 말하며 ‘죄의식’에 빠지자는 말이 아니라 ‘마이 폴트’ 발언으로 동료를 행복하게 해주자는 뜻이다. 아이들에게 ‘그건 내 탓이야. 미안해.(Thats my fault. I am sorry.)’라고 말한 후에 반응을 보면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를 존경하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정, 직장, 단체 등에서 ‘저건 내 탓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집단의 구성원은 행복하다. 자괴감을 느끼고 ‘내 탓이야’라고 하자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으로 저건 내 탓이야라고 하자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네 탓이야’라고 프로그램이 된 CPU()가 자동 부팅 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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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veland Indians vs. Mariners in Seattle.

얼마 전 추신수 선수는 '주목받지 않은 영웅(Unsung Hero)'이라는 부문에 후보에 올랐습니다. 메이저리그 팬 투표로 결정하는 이 부문에서 추신수 선수는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잘하면서도 추앙받지 못한 선수로 분류됐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교회나 세상에서도 칭송되지 않은 영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아봐주지 않지만 사회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화원은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새벽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분들. 또한 교회에서 '무대' 앞에 서지 않지만 뒤에서 조용히 일을 하며 자기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몸이 하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몸의 각 부분이 모여 한몸을 이뤄 제대로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 사회와 교회는 Hero와 Unsung Heror가 함께 만들어가게 됩니다. 엄지 발가락 뿌리 부분은 평소에는 아무 쓸모 없지만 아프기 시작하면 걷기도 힘들고 걷지 못하면 온몸에 이상이 오게 됩니다. 평소에는 양말과 신발에 가려 거들떠보지도 않는 부분이지만 Unsung hero이고 아프면 금세 소중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암은 몸의 일부분이지만 떼어내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물주께서 주신 '정상적인 몸의 지체'는 모두 쓸모가 있습니다. 오늘날 Unsung Hero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겠습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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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원동연 박사의 5차원 전면 교육 세미나에 13시간 정도 참여한 적이 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던 원 박사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초전도체 연구원장이었던 과학자였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권위자였던 그가 교육계에 투신하게 된 사연이 있다. 그는 1990년대에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아들로부터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 바른 교육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5차원 전면 교육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원 박사는 교육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가 개발한 5차원 전면 교육은 인간의 삶을 고차원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이번 세미나에서 알게 됐다.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나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그야말로 완전히 박살이 났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던 것이다.

5차원 전면 교육의 핵심은 한 번뿐인 인생에서 승리하려면 꿈이 있어야 하고 꿈을 이루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을 얻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나누는 것이다. 그 힘은 ▷지력 ▷심력 ▷체력 ▷자기관리력 ▷인간관계력 등 5가지로 이를 위한 실천 커리큘럼이 25가지가 있다고 원 박사는 소개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5차원 교육의 이해가 아닌 5차원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세미나를 들었던 비슷한 시기에 5차원 전면 교육을 이해할 수 있는 풋볼 영화를 보게 됐다. 페이싱 더 자이언츠(Facing the Giants)라는 영화는 셰어우드 침례교회의 마이클 캣 목사가 제작한 것으로 소요 예산이 10만 달러에 불과했던 초저예산 작품이었다. 그 영화는 그러나 개봉 첫 주에 박스 오피스 12위에 오르고 주말에 14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대박을 터뜨린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린 게 아니라 그 내용이다.

이 영화는 그랜트 테일러라는 고등학교 풋볼코치가 매년 하위권에 머물렀던 팀을 주(state) 우승팀으로 이끈다는 내용인데 테일러 코치가 팀을 재건하는 과정은 5차원 전면 교육의 그것과 흡사하다.

보통 풋볼팀에는 90명 이상의 선수가 있는데 샤일로 고교는 선수 숫자가 30명 안팎이고 모두 패배의식에 휩싸여 있었다. 테일러 코치는 결단을 하고 샤일로 고교 풋볼선수들의 사고방식과 운동능력을 바꾸기로 한다. 가장 먼저 시도된 일은 테일러 코치 자신이 바뀌는 것이었다.

변화된 코치는 선수들에게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한 것이 중요함을 기독교 신앙적으로 설명을 하고(지력) 이러한 새로운 목표의식에 의지력과 세계관의 정립을 심어주면서(심력) 연습 강도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체력) 그리고 언어 및 태도의 관리, 시간관리(자기 관리력)를 통해 에너지를 적절히 분산케 하면서 인간 관계의 회복을 이끈다.(인간 관계력).

이 학교의 한 풋볼 선수는 아버지를 찾아가 그동안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겠다는 자세를 유지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해 인간관계의 회복에 성공한다. 그리고 감동을 받은 아버지는 풋볼 팀을 적극지원하기로 하고 자주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였던 풋볼 코치의 자동차를 익명으로 교체해준다. 이처럼 다원적 전면 교육이 실시되면서 시즌을 3패로 시작했던 샤일로 고교는 이후 전승을 거뒀고 주 챔피언십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를 극적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자는 많지만 승리하는 자는 많지 않다. 스포츠계에도 성공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만 승리하는 삶을 사는 인물은 드물다. 원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인은 영어 성적은 좋으나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역사지식은 많은데 역사의식은 없고, 과학성적은 높은데 과학적 사고방식을 하지 않으며, 윤리 성적은 높은데 윤리성이 결여되어 있고, 체육 성적은 높으나 건강하지 않다.” 성공한 사람이 승리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승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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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신종플루로 잃은 탤런트 이광기 씨가 최근 모 방송에 출연해 개그맨 김구라 씨에게 쉬운 성경을 선물해줬습니다. 그리고 성경 안에 이렇게 썼습니다. "너에게 있어서 요즘 가장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성탄절 선물로 줄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자주 읽길 바란다."

이광기 씨는 아들을 잃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조선일보에는 배우 김명국 씨의 이야기가 초기화면 톱기사로 떴습니다. 이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 약속한 인터뷰 장소는 목동 CBS 건물이었다. 그런데 확인차 전화하니 도봉구 창동 순복음 한성교회 바로 옆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겨울 잔광(殘光)이 유리창을 물들이고 중랑천 바람이 그 빛을 흐트리던 날 그가 말했다.

"원래 말술이었습니다. 지금은 끊었어요. 신앙생활도 아들 때문에 하게 됐고요. 투병하던 말기 아이가 느닷없이 성경(聖經)을 읽어달라고 하더군요. 엑스레이 찍을 때면 병원 내 교회를 지나야 하는데 자주 기웃거리기도 하고."

―혹시 바로 옆의 교회가?

"모처럼 나들이 나왔을 때 영길이가 이곳을 지목하며 '여기 다니고 싶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지금 제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입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25/2009122500462.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topheadline&Dep3=top


이들은 왜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너무 힘드니까, 종교의 힘을 빌린다고 나약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 덕분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약할 때 강함되게 하시는 하나님. 이 말은 두 배우에게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너무 약해서 종교에 빠졌다는 차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해져서 강한 하나님을 만난 것, 그것이 바로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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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영성

2009/12/25 11:19


과거에는 피회견인(interviewee)이 종교적인 발언을 하면 기자가 알아서 이 내용을 삭제하거나 완화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20세기 이성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종교는 비이성주의의 결과이고 이성주의의 시대에는 종교적 발언이 '무지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종교 언론이 아니라면 그런 발언을 보도하는 일은 드물었다.

미국은 이성주의를 앞세운 대표적인 나라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이성주의(rationalism)가 뒤로 물러나고 영성(spirituality)이 대두되고 있다. 이성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언론들도 이러한 추세를 묵과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이야기다. 미국 내 최고의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에 미식축구(NFL)의 스타인 레이 루이스가 손뼉을 맞대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목도 '레이 루이스가 말하는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Ray Lewis)'이다. 기사 내용도 상당히 종교적이다. 왜 그런 내용이 실렸을까? 과거에도 선수들이 종교적인 내용으로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이는 기자와 편집자에 의해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고 반면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는 편집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루이스 기사가 나왔을 즈음에 최고의 시사주간지인 타임 매거진도 영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당시 타임즈지 표지 제목이 아예 '신과 과학(God vs. Science)'이었다. 커버스토리로 신과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필자는 미 주류 언론의 인사 발령을 흥미롭게 지켜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언론이 편집국장을 교체하며 사업 부진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나섰다. 이성주의만을 고집하는 편집국장들은 대부분 해고되거나 높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성과 영성의 지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타임 매거진이 몇 년 전 편집국장을 교체한 이유도 바로 그런 맥락이었다. LA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들도 그런 추세를 받아들이며 교체했다.  

왜 그랬을까?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이성주의가 통하지만 떠오르는 세대에게는 이성주의는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성주의로 과학이 발달했지만 삶이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새로운 세대의 판단이 이러한 사회적인 추세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떠오르는 세대는 절반 이상이 부모의 이혼으로 아픔을 경험했고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고 사회복지제도가 무너지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싸여있다. 새로운 세대는 이를 이성주의의 산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영성이다.

스포츠 잡지나 기타 주류 언론에서 쏟아내는 기사들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싫건 좋건 영성을 종교 섹션으로만 몰아넣는 시대는 이미 지난 듯하다. 21세기는 이성과 영성을 잘 조화 하는 자가 리더가 되는 흥미로운 시대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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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will be impossible with God (Luke 1:37)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 분이 연약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태어난 것은 역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처럼 역사 밖에 있는 일로 여겨집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그가 하신 일은 너무나 놀랍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그분을 믿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마음속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서 기적입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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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게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만남은 점점 '번개 만남'이 되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 쉽다. 그래서 부부 관계도 쉽게 결정되는 것 같다. 부부의 관계가 쉽게 결정되니 다른 관계도 너무 쉽게 결정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예수님과의 관계만은 신중했으면 한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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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Beijing Paralympic Games - Day 5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영 선수 나탈리 뒤 트와는 왼쪽 무릎 아래로 발이 없는 여성이다. 1984년 1월29일생인 뒤 트와는 2001년 2월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영 선수였던 뒤 트와의 수영 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듯했다. 뒤 트와는 그러나 수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수영 선수로 활약했던 뒤 트와는 2004년 장애인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받고 세계적인 선수로 주목받았다. 그런 그가 비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해 화제가 됐다. 
 
뒤 트와는 지난 2008년 5월3일 스페인에서 열린 오픈워터 수영(바다, 강, 호수 등 야외에서 하는 수영 경기) 세계 선수권 10km 경기에서 4위에 올라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다. 장애인 올림픽 출전권이 아닌 비장애인 올림픽 출전권 획득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1위와 5.1초 차밖에 나지 않은 근소한 차이의 4위였다. 
 
뒤 트와는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최고 수준의 수영 선수다. 그는 비장애인 수영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을 한 바 있다. 그는 2003년 올-아프리카 게임 800m 자유형에서 금메달, 아프로-아시안 게임에서 800m 은메달, 400m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뒤 트와는 올림픽 출전권을 받았던 지난 5월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당시 "수영을 한 후에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울게 됐다. 비장애인 올림픽 출전은 나의 평생 소원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을 아깝게 놓친 바 있다. 
 
절단되지 않은 오른쪽 발로만 킥한다는 뒤 트와는 그 때문에 장거리 수영 경기에서는 발에 쥐가 자주 난다고 한다. 양쪽 발을 조화롭게 사용하지 않으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는 수영 경기에서 뒤 트와의 선전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뒤 트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10K 마라톤 수영 경기에서 16위에 랭크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원망보다는 미래를 위한 준비에 열심이었다. 뒤 트와의 인생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 많은 시련에 빠져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뒤 트와가 한 발로 올림픽 수영 경기에 나가 16위에 랭크됐다면 우리도 일어설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신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려고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어려움에 빠질 때 함께 한다. 뒤 트와가 종교인인지 아닌지는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분명 신적인 도움이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때 예수는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신다고 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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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nrl
    2009/12/24 14:5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장애 가난 고난 죽음으로 마음과 몸을 가두려 하지만, 본질이신 예수님은 그 아픔 가운데 꿈꾸게 하시고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논쟁을 할 때 나는 보수주의자다, 나는 자유주의자다라고 말을 한다. 다 좋다. 다 중요하다. 서로 보충의 관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살고 있는 가이다. 지금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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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종교

2009/12/23 10:50

Angels Fans During 2002 WS Game
Angels Fans During 2002 WS Game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스포츠와 종교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제우스신을 숭배하고자 열렸고 대부분 스포츠 경기는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기록됐다. 신약성서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스포츠와 관련된 용어를 써가며 전도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오늘날 미국의 스포츠도 종교와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인류학자인 말리노우스키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의 많은 부분이 종교와 닮은꼴이라고 한다. 그는 "종교 행위의 많은 부분이 긴장을 풀고 마음을 집중시키는 데 있는데 스포츠는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스포츠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종교적 예배와 비슷하고 선수들과 코치들의 행위를 보면 종교를 연상케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야구의 투수가 피칭을 준비하기 전에 몸을 풀면서 똑같은 순서를 반복한다든가 마운드에서 반복되는 같은 움직임은 종교적이라는 것이 말리노우스키의 설명이다. 또한 운동 선수들이 터부(taboo)시하는 것을 절대하지 않는 것도 종교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고 말리노우스키는 주장했다.

스포츠와 종교의 비슷한 다른 하나는 바로 이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데 있다. 르네상스, 프랑스 혁명을 거친 이후 이성이 이 세상을 지배했지만 스포츠와 종교만은 이성이 절대적으로 좌지우지하지 못했던 분야다. 기적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게 기적이다.

예를 들어, 2007 NBA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리그 최고 승률팀인 댈러스 매버릭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낙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은 이성주의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사들은 모든 이성을 다 동원해 매버릭스의 쉬운 승리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 매버릭스는 혼쭐이 났다. 이 밖에도 과거에 도저히 누를 수 없는 팀이었던 소련 아이스하키팀을 미국의 대학 선발군이 레이크 플래시드 올림픽에서 누른 일은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스포츠에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은 수도 없이 많이 발생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한국 대표팀이 미국의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을 누른 것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작은 기적이었다.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다. 야구에서 빌 제임스와 같은 통계전문가들이 이성으로 야구를 설명하고자 할 때 반기를 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성을 가장 중요시했던 기자들이었다. 객관성으로 선수를 평가하고자 할 때 기자들은 "야구는 숫자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빌 제임스, 폴 디포데스타 등을 '컴퓨터'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로 치부했다.

그토록 이성과 객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그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의외였다. 실제 그들의 주장처럼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는 객관적 통계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이들의 그러한 태도로 이 사회를 분석하고 뉴스를 전했더라면 이 사회가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을 객관성과 이성만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이미 실패했음이 입증됐다. 미국의 야구 기자들의 주장처럼 이성이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세상을 해석하는 데 필요하게 됐다. 객관적인 팩트(fact)만 주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20세기의 사고로 21세기를 맞는 사람은 시대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이성+그 무엇'이 합쳐져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 무엇은 종교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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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출석 중인 교회에서 지난주 설교를 듣는데 설교자는 "교회 사역자는 첫째, open-minded여야하고 둘째, teachable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목회의 환경은 신학교 교육이나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환경이기에 open-mind가 없으면 제대로 도울 수 없고,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있지만 항상 배움에 대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리더나 기독교 리더들이 이미 굳어진 생각으로 두 가지 성품을 배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은 분명합니다. 자기의 사고의 틀에 갇혀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의 의견과 맞지 않으면 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목회자이든 비목회자이든 open-minded와 teachable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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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 밝은터가 미주 중앙일보 스포츠 면에 글입니다.


분주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각종 행사와 모임이 있었고 이제 세밑의 중요한 행사가 끝이 났다. 너무 바쁜 나머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겨볼 여유가 없었던 같다.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다. 석가탄신일이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인 것처럼 말이다.

기자는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교회에서 말하는 여러 내용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하면 '인내' 생각난다. 화려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한 부모 밑에서 학정의 시대에 태어난 예수는 '인내' 화신이었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는 30 동안 평범하게 자랐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까지 평범한 탄생과 평범한 30 동안의 삶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역사에서 기록된 예수의 30 이후 활동을 보면 이전 30 동안 어떻게 조용히 인내할 있었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IAAF Golden League

 현대와 초현대를 사는 우리는 분초로 승부를 하는 세상에 있다. 누가 1 빠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는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에 사람들은 열광할까. 바로 0.1초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100m 9초대에 달리는 선수와 10초대에 달리는 선수는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다. 1초에 따라 세계적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갈린다.

야구에서도 90마일의 공을 던지는 선수와 100마일을 던지는 선수의 차이는 크다. 90마일이란 시속 90마일을 의미한다. 100마일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1초로 계산하면 90마일은 0.025마일이 되고 100마일은 0.028마일이 된다. 거의 차이가 없다고 있다. 1 날아가는 거리가 0.003마일밖에 차이 나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를 크게 다른 것으로 여긴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른 것이 좋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30년을 기다린 예수의 청년기의 삶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신의 인내를 값지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화적 컨텍스트에 우리는 있다. '인내' 이해함은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힘들다. '인내' 개인적인 '특별한' 노력 또는 신의 간섭이 필요한 부분이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기적을 일으킬 능력을 갖췄던 예수가 30 동안 이렇다 활동을 하지 않았던 일은 평범한 생각으로는 이해할 없다. 그게 바로 예수 탄생의 신비이다.

 스포츠 분야에도 인내를 생각나게 하는 인물이 있다. LA 다저스 단장인 디포데스타(아래 사진. 밝은터가 찍은 것입니다)가 명이다. 그가 다저스 단장으로 재직했을 로두카를 트레이드한 일은 LA 지역 언론과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LA 타임스 기자들이 디포데스타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을 그는 로두카 트레이드의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힌트도 주지 않았다. 로두카 트레이드는 LA 언론이 디포데스타를 다저스에서 쫓아낼 적당한 '꺼리'였다.


팬들의 감정을 이용해 LA 타임스 기자들은 디포데스타의 구단 운영을 난도질했다. 2007 12 현재 로두카는 어떤 선수로 여겨지나. 다저스에서 플로리다로 트레이드됐던 당시 로두카는 '스테로이드 공급의 중간책'이었다는 것이 미첼 리포트에서 드러났다. 다저스 수뇌부는 당시 로두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디포데스타가 로두카에 대해 한마디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그랬다. 대단한 인내심이다. 심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일부 LA 언론 기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박으라고 외쳐댔던 유대인들과 비슷했고 디포데스타는 십자가 상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와 비슷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흥분하는 기독교인들이 없었으면 한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공의를 위해 인내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인생의 승리자다. 어쩌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할 있다. 그러나 사후 세계에서는 분명 다른 대접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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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nrl
    2009/12/21 14: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크리스마스에는 만남을 기뻐하고, 기다리는 것을 생각했었는데...인내가 더 어울립니다. 다시오실 예수님을 조용히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겠습니다.
  2. 밝은터
    2009/12/22 10:2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기다림...그때에는 진리가 확연히 드러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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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란?

2009/12/17 07:07
하나님이 받으셔야 예배다. 내가 아무리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하더라도 받는 분이 받지 않으시면 소용 없다-유진소 목사(ANC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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